“정부, 공기업 기자실까지 실태조사”…해당 산하기관 당혹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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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텅 비어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의 한 브리핑룸. 브리핑룸 제도는 현 정부 들어 이른바 ‘취재 관행을 선진화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됐지만 알맹이는 없이 일방적으로 정부 정책만 홍보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훈구  기자
23일 텅 비어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의 한 브리핑룸. 브리핑룸 제도는 현 정부 들어 이른바 ‘취재 관행을 선진화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됐지만 알맹이는 없이 일방적으로 정부 정책만 홍보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훈구 기자
정부가 행정기관 기자실 통폐합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공기업 등 공공기관과 국책연구기관 등의 기자실 운영 실태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해당 공기업들은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관의 기자실도 폐쇄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니냐”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공기관에 연락한 것으로 전해진 정부 부처 가운데 건설교통부는 연락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국정홍보처와 기획예산처는 이런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한국산업은행 관계자는 23일 본보 기자에게 “이번 주 초 국정홍보처 직원에게서 기자실 운영 실태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홍보처 직원이 ‘기자실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상주 기자는 몇 명 정도인가, 별도의 브리핑실이 있는가, 기자실 운영은 어떻게 하는가’ 등을 묻기에 설명해 줬다”고 덧붙였다.

공공기관 관리 주무 부처인 기획예산처로부터 기자실 실태를 묻는 전화나 팩스를 받았다고 밝힌 공기업과 국책연구기관도 적지 않았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22일 예산처 직원에게서 기자실 현황을 알려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기자실은 없고 기자들이 잠시 대기할 수 있는 ‘기자 대기실’만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측도 “예산처 직원이 전화로 기자실 현황을 물어 와 ‘기자실이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는 22일 예산처와 건교부 등 두 부처로부터 팩스로 기자실 규모와 브리핑실 설치, 상주 기자 및 기자단 존재 유무 등을 문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공 관계자는 “기자들이 오면 머무는 공간이 있지만 기자실이 아니고 원래 직원 휴게실이라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기자들이 상주하는 공간이 없는 일부 국책연구기관에도 21∼23일 정부 부처에서 기자실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전화가 걸려 왔다.

KIEP 관계자는 “정부 당국자가 ‘기자실이 있는지, 보도자료는 어떤 방식으로 배포하는지, 기자단이 있는지’ 등을 물어 와 ‘기자실은 없고 재정경제부 출입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하며 이례적인 경우에만 브리핑을 한다’고 대답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기자실 통폐합으로) 시스템이 바뀌니까 산하기관의 기자실 실태가 어떤지 자체적으로 알아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공기업이나 국책연구기관의 실태를 파악한 적이 전혀 없다”면서 “우리가 조사를 벌였다고 보도한다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용걸 예산처 공공혁신본부장은 “공공기관의 기자실 실태를 파악하도록 지시한 적이 없으며 이에 대한 보고를 받은 바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 정부 부처 공보 담당 공무원은 본인 및 부처 이름을 절대 밝히지 말 것을 전제로 “최근 청와대 관계자에게서 산하 공공기관의 기자실 운영 여부 및 실태를 파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출입 기자들이 앞으로 산하 공공기관의 기자실로 간다면 이번 방안의 취지가 흐려지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는 정부 부처의 기자실 통폐합 문제만 신경 쓰고 있다”면서 “정부 산하기관의 기자실 운영 문제는 추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 부처에 정부 산하기관 기자실 실태 파악 요청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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