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러고도 기자실까지 막아 놓나”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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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개방형 브리핑제를 통해 직접 취재를 제한한 데 이어 기자실 통폐합 등을 추가로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개방형 브리핑제가 형식적이고 재탕식으로 진행되는 데다 정보공개를 청구하더라도 민감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자들의 공무원 접촉을 사실상 봉쇄하고 각 부처의 기자실을 통폐합하기로 한 것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조치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실한 브리핑제=재정경제부는 매주 목요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재경부 1층 통합 브리핑룸에서 정례 브리핑을 실시하지만 이미 알려진 각종 통계, 민간경제연구소 자료 등 ‘구문(舊聞)’인 정보들을 나열한 자료를 들고 일일이 읽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등록기자 150여 명 중 브리핑 참석자가 10명이 채 안 돼 기자보다 재경부 직원이 더 많은 날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시간을 다투며 속보를 전해야 할 상황에서도 농림부 당국자들은 브리핑을 거의 하지 않았다. 40명이 넘는 농림부 출입기자들은 사실 확인을 위해 담당 공무원과의 전화 취재를 시도하지만 한꺼번에 전화를 걸기 때문에 통화조차 쉽지 않다.

정부는 2003년 9월 부처별 기자실을 통폐합하고 기자들의 사무실 방문 취재를 금지하는 대신 수시로 현안에 대해 설명하는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어 도입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민감한 내용은 제외한 정보 공개=정부는 기자들의 ‘대면 취재’를 거부하는 대신 정보공개를 청구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가 밝히고 싶지 않은 민감한 자료는 온갖 이유를 들어 제출을 거부하거나 자료를 제출하더라도 정작 ‘알맹이’를 쏙 빼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05년 정보공개 청구 건수는 13만841건이다. 취하 및 계류 건수를 제외한 12만879건 중 1만2568건(10.4%)은 부분 공개만 됐고, 1만1412건(9.4%)은 비공개 처리됐다. 비공개 사유는 국방 등 국익 침해, 국가안보사항, 공정한 업무수행 지장, 개인 사생활 침해, 자료 부존재 등이다.

대북송전 계획노선,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조사 결과 등은 ‘국방 등 국익 침해’를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심지어 2003년 3월∼2005년 6월의 통일부 장관 업무추진비 지출 서류도 국방 등 국익 침해라며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위헌, 위법 소지 다분”=법조계에서는 정부 조치가 언론중재법 3조에 정면으로 위배된 조치라는 견해가 많았다.

현 정부와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 등이 주도해 만든 언론중재법 제3조(언론의 자유와 독립) 2항에는 ‘누구든지 언론의 자유와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규제와 간섭을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3항에는 ‘언론은 정보원에 대해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그 취재한 정보를 자유로이 공표할 권리를 갖는다’고, 4항에는 ‘언론의 자유로운 정보원 접근과 공표 권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제한받지 않는다’고 각각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헌법이나 법률을 통하지 않고 국무회의 의결에 의한 ‘행정 규칙’ 형식으로 이뤄진 이번 조치는 자신들이 만든 법을 스스로 어기는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번 조치로 개별 공무원도 국민으로서 갖고 있는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의 황도수 변호사는 “정부가 언론의 공무원 접근을 통제하겠다는 것은 공무원이 갖고 있는 헌법상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근(헌법학) 숭실대 교수는 “기자실은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어디에도 없는 강력한 언론법제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대체수단도 없이 기자실을 없애는 것은 기자를 없애고 정보를 취득하는 개인만 남기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자유민주주의 자체 죽이는 조치”=허영 명지대 법대 초빙교수는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정부를 통제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번 조치는 이 같은 기능을 심히 약화시킬 수 있다”며 “언론은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만 보도하라는 것이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호(헌법학)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의 이번 조치는 언론의 취재원 접근을 제한해 사실상 정부가 스피커를 통해 발표하는 것만 기사화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헌법소원 청구 대상”이라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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