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쿨~하게 군대 가자

  • 입력 2007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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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있을 때 실컷 놀아야지….”입대를 앞둔 신세대에게 이렇게 충고한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지 모른다. 요즘 젊은 층은 군 입대를 앞두고 인턴으로 경력을 쌓는가 하면 취업과 시험 준비기간까지 염두에 두고 군 생활을 계획한다. 원대연 기자
“사회에 있을 때 실컷 놀아야지….”입대를 앞둔 신세대에게 이렇게 충고한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지 모른다. 요즘 젊은 층은 군 입대를 앞두고 인턴으로 경력을 쌓는가 하면 취업과 시험 준비기간까지 염두에 두고 군 생활을 계획한다. 원대연 기자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진로와 여자친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등으로 고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하지만 신세대들은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며 입대 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훈련소 입소자들(왼쪽)이 군대생활을 잘하겠다는 각오로 가족과 친구(오른쪽)를 향해 함성을 지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진로와 여자친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등으로 고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하지만 신세대들은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며 입대 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훈련소 입소자들(왼쪽)이 군대생활을 잘하겠다는 각오로 가족과 친구(오른쪽)를 향해 함성을 지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군대 간 남자친구를 위해 이색적이고 정성이 담긴 선물을 만드는 것이 곰신들의 최대 고민이다. 엽서 한장 한장에 편지를 써서 100장을 엮은 선물(사진)도 인기를 끄는 아이템 중 하나.사진 제공 꾸나와꼼신 카페
군대 간 남자친구를 위해 이색적이고 정성이 담긴 선물을 만드는 것이 곰신들의 최대 고민이다. 엽서 한장 한장에 편지를 써서 100장을 엮은 선물(사진)도 인기를 끄는 아이템 중 하나.사진 제공 꾸나와꼼신 카페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 남성들이 거쳐야 할 인생 최대의 관문 중 하나다.

하지만 군 입대 전 풍속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입대 영장이 나오면 ‘사회에 있을 때 실컷 놀아 두자’는 식의 분위기가 팽배했던 게 사실.

요즘은 적극적으로 군 생활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1. ‘이등병은 세 발짝 이상 드리블하면 안 된다.’

‘하프라인은 갈굼의 나라, 절대 넘지 마라.’

‘항상 열심히 뛴다는 사실을 어필하라….’

제대 군인에겐 추억을, 입대를 준비하는 예비 군인에게는 군 생활의 알짜 노하우를 선사하는 ‘서 병장의 군생활 라이프’ 손수제작물(UCC)의 일부다.

이 동영상은 ‘군대스리가’(군대 축구)에서 이겼을 때와 졌을 때의 대처 방법, 고참의 기분을 좋게 하는 적절한 센스, 군대 뽀글이(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 등 실제 군 생활에서 유용한 정보를 재미있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달한다.

#2. Q. 커리어 관리 측면에서 군대 가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는.

Q. 군복무 기간 2년을 효율적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Q. 훈령병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등 계급별 자기계발 계획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국폴리텍1대학 박양근 행정처장(경영학 박사)이 최근 펴낸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 간다’라는 책을 보면 정답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군대를 일종의 비즈니스 스쿨로 설정하고 △건강유지법 △전략적 독서론 △인간관계와 리더십 △외국어와 시간관리 노하우 등을 경영학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저자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군대라면 체계적으로 준비해 가장 효율적으로 2년을 보낼 수 있는 커리어 플랜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군 입대를 앞둔 젊은 층은 고된 훈련에 적응하기 위해 체력단련에 힘쓰는 것은 물론 관련 서적과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군대 생활의 노하우를 갖추려 애쓴다. 또 흘려보내기 쉬운 입대 전 시간을 활용해 인턴 경험을 쌓고 각종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도 한다.

내년 초 입대할 예정인 이창훈(22) 씨는 “한번 가야 되는 군대라면 철저하게 준비해 무엇인가 얻어 와야 되지 않겠느냐”며 “군 생활도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7년 군 입대를 앞둔 신세대들의 생활상과 생각, 고민을 들여다봤다.

○ 입대 준비는 필수

지난해 12월 입대한 김준우(22) 씨. 대학 1학년을 마친 그는 육군 사병으로 입대하는 대신 의무소방시험을 준비했다. 의무소방 경력은 전역 후 소방공무원에 지원할 때 혜택이 있을 뿐 아니라 유학 시 봉사활동 경력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그는 훈련소 입소에 대비해 몇 개월 전부터 체육관에 다니며 그간 미뤄온 운동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권유로 보약까지 먹으며 체력을 키운 그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의무소방대원으로 입대해 고향에서 근무 중이다.

김 씨처럼 군 생활은 물론 제대 후까지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예비 군인들이 적지 않다.

입대를 앞두고 헬스클럽 등에서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것은 이제 기본이다. 단순한 체력단련을 넘어 장기적인 ‘몸짱 만들기’ 프로그램의 하나로 운동을 시작하는 이들도 많다.

헬스클럽에서도 입대 예정자들에게 지구력 훈련과 저강도의 웨이트트레이닝을 병행할 것을 권유한다. 트레이너 김현기(34) 씨는 “많은 젊은 남성들은 군대에 가서 몸짱이 되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며 “입대 전에 웨이트트레이닝과 친숙해진 뒤 상병 휴가 때 영양 보충제를 구입해 부대에서 본격적인 몸 만들기에 돌입하는 게 보편적인 코스”라고 말했다.



요즘 신세대들 입영 준비 쿨합니다

군 생활을 소재로 한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군대 생활의 기본원리를 설명하면서 고참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요령 등을 전수한다.

최근 출간된 ‘똑똑한 놈은 웃으면서 군대간다’ 외에도 ‘서경석의 병영일기’ ‘너희가 군대를 아느냐’ ‘군대가기 겁나지’ 등의 군대생활 백서는 군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박양근 처장은 “군 입대 전의 막연한 불안감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체력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 군 생활로 사회 흐름에 뒤처질 것이라는 걱정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며 “군 생활에 대비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했다.

○ 입대 전 라이프플랜 꼼꼼하게 짠다

이달 말 군 입대를 앞둔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05학번 신완용(21) 씨는 입대일이 결정된 뒤 은행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학교 홍보대사로도 일하고 있다.

신 씨는 “군 입대가 얼마 남지 않아 그냥 놀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제대 후 복학과 취업 준비를 위해 경력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 대학생들의 군 입대 시기는 개인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다만 최근에는 제대 이후를 염두에 두고 아예 대학 1학년을 마치자마자 일찌감치 군에 가거나, 학부를 졸업한 뒤 장교 등 다양한 경로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눠지는 추세다.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면서 취업 고시 자격증 등 시험 준비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부 대학생들은 군의관들이 신체검사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를 인터넷 카페를 통해 공유하면서 정확한 신체등급 판정을 받기 위해 공부하기도 한다.

재검을 통해 4급 판정을 받고 공익요원을 준비 중인 이모 씨는 “불법적인 면제가 아니라 군의관들이 임의로 결정하던 부분에 대해 정확한 기준과 논리를 갖고 제대로 된 판정을 받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 여자친구와는 ‘쿨’하게

“입대 50일 전에 여자친구에게 군대에 간다는 사실을 말할 계획입니다. 기다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고 헤어질 필요도 없다고 봐요. 군 복무를 하면서 남녀에 대한 기준도 많이 달라질 테니 그냥 유연하게 대처해 나갈 생각입니다.”(연세대 문헌정보학과 06학번 최광완 씨)

군 입대를 앞둔 남성들에게 빠지지 않는 고민이 여자친구와의 관계다. 과거 아버지 세대는 ‘고무신 거꾸로 신는 사태’를 걱정했지만 요즘은 군화와 이별을 동의어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는 추세다.

여대생들의 인식도 현실적으로 바뀌고 있다.

“복학생들에게서 칙칙한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오해입니다. 군대에 다녀와서인지 훨씬 안정적이고 멋진 선배들이 많아요.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과는 사귀지 않겠다는 친구들도 적지 않습니다.”(이성경 씨·20)

군 입대 후 연락이 되지 않아 애를 태우는 사례도 거의 사라졌다.

과거에는 특정 계급이 되기 전까지 전화 통화조차 어려웠지만 이제는 신병들도 손쉽게 전화를 할 정도로 군 내부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훈련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전화가 와요. e메일은 물론 소대장의 휴대전화를 빌려서 동영상 메일까지 보내옵니다. 오히려 남자친구가 가끔 편지를 쓰지 않아서 섭섭할 때가 있을 정도라니까요.” 지난해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한 여성의 이야기다.

글=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남친 군대 보낸 ‘곰신’들이 사는 법

“치근거리는 복학생 오빠 퇴치법 좀 알려줘요”

“훈련소 나와 자대 배치 받으면 자동으로 이등병이 되나요?”

“첫 면회인데 어떤 것을 갖고 가야 하죠?”

군대에 남자친구를 보낸 여성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다. 예전엔 궁금한 것이 많아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군 생활에 관한 각종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인터넷 카페 ‘꾸나와 꼼신(cafe.daum.net/gomsingguna)’ 회원들이 남자친구의 제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 ‘곰신’ 수십만 명, 인터넷 카페서 활발하게 정보 나눠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성들은 스스로를 고무신의 줄임말인 ‘곰신’으로 부른다. 곰신들은 인터넷 카페가 활발해진 2000년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뭉치며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현재 수십 개의 인터넷 카페에서 수십만 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이들이 곰신 카페에 가입한 것은 △군에 관한 궁금증을 풀고 △선물 아이템을 공유하며 △사랑과 이별의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서다.

“회원들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모임을 가져요. 스물한두 살이 가장 많지만 가끔 여고생 회원들도 나와요. 서로를 곰신동생, 곰신언니라고 부르면서 꽃신 신는 날(남자친구가 제대하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지난해 12월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홍모 씨)

곰신 카페에는 ‘새로운 남자가 접근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군에서 막 제대한 예비역들이 군대에 남자친구를 보낸 곰신들을 위로하다가 사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일부 회원들은 ‘복학생 오빠는 곰신의 적’이라며 경계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하지요.”(카페 운영자 박모 씨)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성들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평소 관심이 없던 편지를 쓰고, 국군방송을 즐겨 보기 시작한다는 것. 국군방송의 ‘주고 싶은 마음 듣고 싶은 얘기’는 이들에게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 ‘하트 솔라씨’ 선물 가장 인기

첫 면회를 앞둔 곰신들은 어떤 음식을 만들어 가면 좋을지 막막하다. 카페 회원들이 추천하는 메뉴는 무쌈말이, 샌드위치, 베이컨말이 등이다.

최근 곰신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은 ‘하트 솔라씨’다. 종이로 하트모양을 접은 뒤 그 안에 비타민 제품인 솔라씨를 넣은 선물이다.

남자친구가 첫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뒤에는 ‘전지편지’를 보내 허전한 마음을 달랜다. 전지편지란 A4용지 16장을 엮어 앞뒤로 32쪽에 조목조목 정성을 들여 편지를 쓰는 것. 이 밖에 골판지로 케이크 상자를 만들거나 하드보드지로 축구공 모형을 만들어 그 안에 과자선물을 넣는 경우도 있다. 곰신들이 선물로 가장 고민하는 날은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다. 자신이 보내는 초콜릿이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일부 곰신들은 아예 전문업체에 군인용 초콜릿 제작을 의뢰하기도 한다.

군대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군인몰(www.guninmall.com)의 운영자 최윤정 씨는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 주문이 폭주해 2, 3일 동안 하루 한두 시간씩 자면서 제작했다”며 “이름이나 이니셜을 새긴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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