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채널 시대… 타사 프로 ‘거침없이’ 언급-패러디 잇따라

  • 입력 2007년 5월 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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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상상플러스’에서 저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난달 28일 MBC 오락프로그램 ‘무한도전’(토요일 오후 6시 35분)을 보던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KBS 2TV ‘상상플러스’(화요일 오후 11시)에서 나올 법한 말이 개그맨 정형돈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MC로 활약했던 ‘상상플러스’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경쟁사 프로그램에서 밝힌 것이다. 그는 24일 방송을 끝으로 ‘상상플러스’에서 물러났으나 마지막 녹화 때 하차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고별인사를 못했다.》

○ 오락 프로그램, 채널 간 장벽 붕괴

최근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뜻으로 ‘크로스 채널’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MBC ‘무한도전’은 4월 21일 방영분에서 개그맨 하하가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 장면을 연출하며 KBS2 ‘스타골든벨’(토요일 오후 5시 30분)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올해 초에는 KBS2 ‘스펀지’의 설명 방식을 응용해 딸꾹질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SBS도 마찬가지다. 4월 15일 방영된 SBS ‘하자GO’(일요일 오후 5시 30분)에서는 KBS2 ‘개그콘서트’의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이 출연해 “개콘보다 길게 나와 좋다” “마빡이처럼 하자” 등 ‘개그콘서트’ 설정을 인용했다. ‘헤이헤이헤이2’(3월 8일 방영분)에서는 MC 신동엽이 KBS2 드라마 ‘황진이’의 황진이(하지원)와 똑같은 한복을 입고 나왔다. 동시에 드라마 ‘황진이’의 주제가인 ‘꽃날’도 흘러나왔다.

KBS2 ‘해피선데이-여걸식스’(4월 29일 종영)도 올해 초 SBS ‘헤이헤이헤이2’에 고정 출연 중인 탤런트 이종수를 게스트로 초대해 ‘헤이헤이헤이2’에서 선보였던 ‘19금 커플’ 연기를 재연하게 했다.

○ 다채널 시대 스타 파워 때문

예전에는 경쟁사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 MBC 최영근 예능국장은 “경쟁사를 홍보해 줘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고 출연진이 특정 방송사에 고정 출연했기 때문에 타사 프로그램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며 “다매체 시대에 경쟁 프로그램을 이야기한다고 홍보가 되는 시대도 아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관대해졌다”고 말했다.

방송사 간의 장벽을 깨뜨린 이들은 개그맨이다. 지난해 말 ‘개그콘서트’(KBS2)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SBS)의 개그맨들이 ‘마빡이’ ‘화산고’ 등 상대 프로그램의 유행어나 캐릭터를 패러디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도는 ‘닮은꼴’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출연진 사이에서는 크로스 채널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올 초에는 MBC ‘개그야’와 SBS ‘웃찾사’ 출연진이 MBC ‘설날특집-개그맨 총출동’ 무대에 나란히 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채널 간 경계 파괴의 이유로 오락 프로그램을 좌우하는 스타 시스템, 시청자들이 좋아한다면 경쟁 방송사 아이템이라도 활용하겠다는 PD들의 인식 변화 등을 꼽았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예전에는 경쟁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가면 안 쓴다는 분위기였으나 다채널 시대 스타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채널 파괴’를 말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실제로도 MC 유재석의 스타 파워가 방송사 예능국장 파워보다 더 세지 않으냐”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김지룡 씨는 “과거 지상파 3사는 타사 채널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며 “출연자들이 다른 방송사에서 맡은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뻔히 아는 상황에서 굳이 감출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솔직한 태도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최근 대중문화 코드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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