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 초대 국방장관 조영길씨 ‘전시작전권’ 기고

  • 입력 2006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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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 시작한 이후 현 정부의 초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 전 장관에게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미동맹의 균열과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에 대한 조 전 장관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이에 조 전 장관은 “인터뷰는 자칫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만큼 현 사태를 바라보는 내 생각을 직접 국민께 알리고 싶다”며 기고문을 보내왔다.》

저금통장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은 사유재산권의 침해였다. 통장을 쪼개자”고 한다면 그 부부 관계는 빨간 불이 켜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28년 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미 양국이 함께 행사하기로 약속했던 연합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이 “그것은 미국에 의한 주권 침해였다. 해체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쪽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최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 장관이 보냈다는 편지의 행간에 숨은 뜻을 알 것도 같다.

상호방위조약이나 군사협정은 주권국가 간의 계약이자 서면약속이다. 이를 체결하는 것도, 해지하는 것도 주권행위다.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 이익이라는 대전제 위에서 냉철하고 이성적인 분석과 판단이 수반되어야 한다. ‘자주’라는 지극히 감상적이고 선정적인 수사로 복잡한 논리적 과정을 훌쩍 뛰어넘는 기교가 놀랍기도 하거니와 그것이 통하는 시대적 풍토가 당혹스럽다.

연합 전시작전통제권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선제 공격’에 대한 대응체제이다. 한국이 제3국과 분쟁에 돌입하거나, 한국이 먼저 북한을 공격할 경우에는 이 체제가 발동되지 않는다. 미국이 먼저 북한을 공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4년 북한 핵 위기 때 미국은 대북 군사제재를 결정했다. 주한미군에 추가전력이 증원되고 한반도 주변 해역에 해군력이 증강 배치됐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작전권의 공동 행사자’인 한국의 반대로 미국의 일방적인 공격에 차질이 생겼다. 이때 다급해진 김일성이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미국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위기는 일단락됐다.

전시작전통제권을 공유한 한국의 역할이 유사시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연합 전시작전통제권은 이를 매개로 양국이 ‘작전권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핵심이다.

오늘의 북핵 문제는 1994년보다 훨씬 심각하다. 미국은 이미 6자회담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경제제재로 목을 조이다 안 되면 다음은 군사제재다. 10여 년 전부터 유지해 온 계획이니까 새로운 선택도 아니다. 북한도 미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쏘는 담력을 보면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배짱으로 보인다.

만약 국제법상 엄연한 독립국가인 북한을 또 다른 독립국가인 미국이 공격해 전쟁이 난다면 연합 전시작전통제권 해체로 제3국의 입장으로 바뀐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유명한 ‘균형자론’으로 전쟁을 중재하고 나설 것인가, 아니면 북녘에서 벌어지는 참화를 지켜보면서 쏟아지는 파편만 뒤집어 써야 할 것인가. 연합 전시작전통제권과 작전권의 공유는 북한의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럼즈펠드 장관의 편지에 미국의 섭섭한 감정이 배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적인 해석이다. 미국은 그런 식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한국이 연합 전시작전통제권을 해체해 이른바 ‘자주를 쟁취’할 때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대북 군사행동의 자유’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과 상황이 이를 필요로 하고 있다. 기왕에 깰 것이라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 미국의 진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있지 않느냐”고 얼굴을 붉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간 조약이나 군사협정은 채권 채무의 관계가 아니다. 상호 신뢰의 바탕에서 공동의 이익을 확대해 나가는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신뢰를 상실한 동맹은 적보다 못하다.

반미시위도 좀 하고, 한미연합사령부도 해체하고, 훈련을 못하게 하고, 미국의 자존심을 좀 상하게 하더라도 한미동맹은 변함이 없고 미군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며 유사시 미 증원군이 즉각 뛰어와 피를 흘려 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화법이 참으로 난해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둘러싼 국가적 논란이 그것으로 끝인지, 새로운 시작인지 가늠할 수 없는 답답함이 거기에 있다.

조영길 前 국방

△1940년 전남 영광 출생

△1958년 광주 숭일고 졸업

△1961년 장교후보생(갑종 172기) 입대

△1962년 소위 임관

△1969년 베트남전에 맹호부대 중대장으로 참전

△1974년 육군대학교 졸업

△1989년 육군본부 전략기획처장

△1991년 육군 보병 제31사단장

△1993년 합참 전력기획부장

△1995년 육군 제2군단장

△1998년 육군 제2군사령관

△1999년 합참의장 겸 통합방위본부장

△2003년 2월∼2004년 7월 제38대 국방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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