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85>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2월 8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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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나라 기장(騎將) 관영의 군사들이 벌써 성보로 밀고 들어 왔습니다. 그 기세가 하도 사나워 감히 그곳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쫓겨 왔습니다.”

하지만 전날과 마찬가지로 패왕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어제는 주국(柱國) 항타가 10만 군민(軍民)과 더불어 지키던 팽성이 한낱 유방의 기장(騎將)에게 떨어지고, 계포 같은 대장이 옥지기[옥리]에 지나지 않았던 조참에게 크게 져서 작은 산성(山城)에 갇혀 있다더니, 오늘은 또 서초의 가슴 같고 배 같은 땅이 그새 모두 관영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냐? 과인이 남겨 둔 여러 성읍(城邑)의 수장(戍將)들은 머리가 몇 개나 있는 놈들이냐? 과인이 맡긴 땅과 백성을 잃고도 그 머리가 어깨 위에 성하게 붙어 있기를 바란단 말이냐? 그들과 더불어 성읍을 지키던 군민들도 그렇다. 어떻게 되찾은 초나라 땅인데 그리 쉽게 내어 준단 말이냐?”

그렇게 소리치며 분을 못 이겨 몸까지 떨었다. 그 바람에 초군의 고단한 처지는 장졸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져 그 사기를 꺾어 놓았다. 보다 못한 종리매가 나서서 패왕을 말렸다.

“대왕께서 그리 노하신다 하여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고정하시고 앞날을 헤아려 대세를 만회할 계책부터 세우십시오.”

“이미 팽성이 떨어지고 산동과 서초의 심장부가 적에게 빼앗겼는데 앞날은 무슨 앞날이냐? 이제부터 전군을 들어 한군을 치고 힘이 모자라면 산기슭을 베개 삼아 죽는 길 뿐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일시 우리 초나라가 몰리고 대왕께서 고단하시나 앞날은 다릅니다. 잠시 물러나 군사를 기르고 기력을 회복하신 뒤에 유방과 싸워도 늦지 않습니다. 대왕의 초절한 무용과 초나라 용사들의 매서운 기세가 되살아나 합쳐지면, 진나라를 쳐 없애고 천하를 호령하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종리매가 그렇게 간곡히 말하자 패왕도 조금 진정했다. 이윽고 깊은 한숨과 함께 종리매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먼저 군사를 물려 진성(陳城)으로 옮기십시오. 진성은 지난날 진왕(陳王=진승)의 장초(張楚)가 도읍을 삼았던 곳으로 그리로 가면 당분간 군사들을 먹일 곡식을 얻을 수 있고, 또 그 든든한 성벽에 의지해 군사를 쉬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먼 길을 갈 만큼 군사들의 기력이 회복되면 우선 회수(淮水)를 건너 구강(九江) 땅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경포(경布)가 분탕질을 치기는 하지만 구강 땅의 대부분은 아직 대사마 주은(周殷)이 잘 지켜 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자리 잡으신 뒤 오중(吳中)에 사람을 보내 쓸 만한 강동의 자제들을 몇 만 명 더 모아 오면, 우리 초군이 옛날의 기세를 되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종리매의 말에 패왕은 그답지 않게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한참이나 말없이 눈을 감고 있다가 이윽고 눈을 떠서 말했다.

“좋다. 그럼 우선 진성으로 가자. 군사들을 물려 진성으로 가되, 적이 뒤쫓아 오면 언제든 맞받아칠 수 있도록 하라.”

그렇게 되자 꺼지기 전에 한번 빛나는 촛불처럼 세차게 타올랐던 기세는 급작스레 사그라지고 초군은 다시 쫓기는 느낌으로 진성을 향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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