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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타임 투 리브’&‘더 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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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타임 투 리브’&‘더 차일드’

입력 2006-02-03 03:05수정 2009-10-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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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암선고를 받은 젊은 작가가 주변과 이별하는 과정을 그린 ‘타임 투 리브’. 사진 제공 프리비전

대체로 유럽에선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진보를 모두 끝낸 듯한 안정감이 유럽의 미덕이라면, 나이 많은 부르주아를 보는 듯한 무기력은 유럽의 또 다른 이면이다. ‘유럽’이라는 대륙을 이렇게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은 분명, 무례하고 거칠다. 그러나 잇따라 나온 유럽 영화 2편은 문득 ‘유럽적인 것에 대하여’를 성찰하게 한다.

9일 개봉되는 프랑스 영화 ‘타임 투 리브’(Time to leave·18세 이상)와 현재 상영 중인 벨기에 영화 ‘더 차일드’(The child·12세 이상)는 보잘것없는 것을 대단하게 보는 서양인 특유의 따뜻한 여유와 오랜 역사에서 연마된 유럽인 특유의 관조적 차가움이 돋보이는 영화들이다.

‘타임…’은 젊고 잘생긴 유명 패션사진작가가 갑자기 3개월 시한부 암 선고를 받으면서 주변과 이별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의 이름은 ‘로맹’이며 성적 취향은 ‘게이’다. ‘아버지’를 거부한 게이답게 이기적인 그는,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성자(聖子)가 된다는 정형을 거부한다.

돌보는 손길을 거부하고 남은 삶을 자신의 본능과 감정에 더 충실해지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 풍경과 사람들을 열심히 디지털 카메라에 담는다. 마치 영생이라도 얻은 듯 말이다. 그런 그에게, 죽음이 닥치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찾아온다. 여행 중 우연히 들른 휴게소 여급에게서 “남편이 불임인데 도와 달라(정자를 제공해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 것. 고민하던 로맹은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여급의 남편과 함께 트리플 섹스를 하는 로맹의 행동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죽음을 비관하지 않고 또 다른 ‘삶의 지속’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주인공의 태도는 가히 ‘인문학적’이다. 어떤 도덕적 잣대로도 잴 수 없는 깊은 휴머니즘을 넘어 실용적 삶의 미학까지 느껴진다. ‘8명의 여인들’ ‘스위밍 풀’을 만든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작품이다. 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절제된 화면과 대사가 감독의 변화된 생각을 읽게 한다.

철없는 10대 소년의 굴곡진 삶을 그린 ‘더 차일드’. 사진 제공 스폰지

‘더 차일드’에서도 현대 유럽인들 생각의 일단을 볼 수 있다. 소매치기, 도둑질로 생계를 연명하는 철없는 10대 소년 브뤼노가 여자 친구 소니아와 불장난 끝에 아기를 낳고 교도소에 들어가는 등 나름대로 곡절을 겪으며 철이 든다는 줄거리다. 돈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내다 파는 브뤼노는 생계가 어렵자 급기야 갓난아기까지 내다 판다. 기절초풍한 여자 친구에게 그가 하는 말은 “또 낳으면 되잖아”. 이런 인면수심의 브뤼노는 결국 소니아에게도 버림받고 교도소까지 들어간 뒤 눈물로 참회한다.

브뤼노가 훔친 물건인 줄 알면서도 냉정하게 흥정을 하며 사들이는 어른들의 모습, 자기 피에 대한 일말의 애착조차 갖지 못하는 소년 브뤼노의 초상은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할 대로 팽배한 차가운 유럽인의 얼굴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짐승 같은 내면을 가진 사람이라도 ‘모두 착하다’는 성선설을 믿는 듯한 감독의 메시지에서는 지금 그들(유럽인)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읽게 한다. ‘로제타’(1999)에 이어 다르덴 형제 감독에게 두 번째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작품이다. 온갖 영상적 이미지에 질린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담백한 영상과 깔끔한 줄거리가 ‘미니멀리즘의 극치’라고 칭찬을 받을 것 같고 국내 대중에게는 늘 우리 텔레비전에서 익숙하게 보아 온 인간극장류의 다큐를 뛰어넘지 못할 것 같은 이국적 거리감이 존재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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