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통일대통령 환상이 빚은 재앙

  • 입력 2005년 11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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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라는 말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 어떤 반대도, 어떤 난관도 모두 빨아들여 녹여 버리는 블랙홀이다. 수천 년 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네 몸속 어딘가에는 ‘통일 DNA’가 숨어 있어, 외부 자극이 있을 때면 곧바로 표출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그 정점에 2000년 6월의 남북공동선언이 있다. 온 나라가 남북정상회담으로 들떠 있던 그때, 기자는 도쿄 특파원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의 열기는 곧바로 도쿄로도 전해졌다. 쓰키지(築地)의 아사히신문 별관 9층의 동아일보 지국도 덩달아 북적댔다. 아사히신문 기자들이 찾아와 평양과 서울에서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TV뉴스를 함께 보며 흥분한 어조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화두는 단연 ‘통일’이었다. “남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나 통일을 지지하느냐”, “통일이 된다면, 언제쯤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지금이야 빛바랜 얘기들이지만, 그때는 그런 질문이 자연스러웠다.

외국인들까지도 곧 통일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던 그 시점에, 역사적 사건의 기획자이자 주인공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DJ가 김정일 답방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을 넘어 ‘통일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당시 일본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답방하지 않는다면 남북공동선언은 미완(未完)의 합의가 될 것”이라고 하는 전문가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DJ가 통일대통령을 꿈꿨다면 그 꿈은 성급했고, 방법은 불순했다. DJ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직후인 2001년 2월 국세청은 23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DJ가 언론개혁을 언급한 직후다. 그 뉴스는 기자를 곤혹스럽게 했다. 일본의 지인들은 “동아일보는 괜찮으냐”, “뭐, 밉보인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어 왔다. 그런 질문 속에는 “너희 나라는 그 정도밖에 안되느냐”는 깔봄도 배어 있었다. 대답이 궁해 “짐작은 가지만, 좀 더 지켜보자”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창피했다. 아직도 권력이 언론을 길들이려는 나라의 특파원이라는 사실이.

최근에는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국가정보원이 언론사를 무더기 도청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세무조사나 도청도 문제지만 먼저 규명돼야 할 것은 권력 내부의 ‘음습한 공작’이다. 언론사에 대한 무차별적인 적대행위는 권력의 비호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6·15남북공동선언의 후속조치로 2000년 8월 남한 언론사 사장들이 북한을 집단 방문했을 때 동아일보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DJ가 진노했다”는 증언은 세무조사의 불순한 의도를 뒷받침한다.

“국내외 여건상 김정일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온 동아일보의 태도가, 퍼주기를 해서라도 김정일 답방을 성사시키려던 권력 핵심부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도 있다.

물론 DJ 정부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선 “어느 시대나 비열한 행위를 한 사람은 종교나 도덕이나 애국심 때문에 했다고 하는 가면을 씌우려 애쓴다”는 어느 독일 시인의 말을 상기시키고 싶다.

내달 8일 DJ 정부 시절의 장관, 대통령수석비서관, 남북정상회담 참석자 등이 모여 DJ 노벨상 수상 5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른다는 소식이다. 성대한 파티에 앞서 공권력을 동원해 부당하게 언론의 자유와 존엄성, 자부심을 훼손한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순리다.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다. 몇 사람을 늘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다.” 미 역사상 진정한 ‘민권대통령’으로 존경받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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