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배급제’ 부활 1개월…개방 물결속 체제혼란 우려

  • 입력 2005년 11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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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이 지난달부터 실시하고 있는 새로운 식량 공급제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공급가격을 최대 17배나 벌려 놓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어떻게 운용하나=출근하면 직장에서 배급표를 받아 식량공급소에서 훨씬 낮은 가격으로 식량을 배급받을 수 있다. 이 가격은 북한이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하면서 새롭게 책정한 식량공급가격과 동일하다.

부양가족의 공급가격은 노동력 유무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노동력이 있는데도 전업주부로만 있는 여성은 ‘26호 가격’이라고 부르는 높은 가격으로 식량을 공급 받는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26호 가격은 배급제가 시작되기 직전인 9월 말 장마당에서 형성됐던 식량 가격과 거의 일치한다.

농촌에서는 아직 분배가 시작되지 않았으나 기관원들이 각 가구를 돌아다니며 개인 텃밭 작황을 조사하고 있다. 텃밭 생산량은 배급으로 간주해 공급가격에 해당하는 돈을 국가에 바치고 식량 여유분은 수매시키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텃밭에서 생산된 식량은 개인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었다. 예고 없이 도입된 새 제도에 따라 열심히 일하고도 갑자기 돈까지 바치게 된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최근 탈북을 한 북한 주민들이 전했다.

▽배경=지난 10년간 북한은 공공 산업이 거의 문을 닫은 대신 주민들이 너도나도 장사에 뛰어들어 사(私)경제 활동만 비대해졌다. 강연회 학습회 같은 조직생활에도 참가하지 않는 이 ‘자발적 실업자들’ 때문에 사회적 통제력은 그만큼 이완됐다. 또 파는 사람만 많아지고 수요는 줄어드는 장마당 공급 과잉, 부익부 빈익빈, 전주(錢主)에 의한 독점판매, 금지 품목 거래 등도 큰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최근 경제난 해소를 위해 남측의 관광객들과 외국인들을 대거 받아들이는 부분적 ‘개방’정책을 실시하는 북한 당국으로선 이러한 내부 혼란을 방치하면 체제 위협 요인으로까지 곪아 터질 수 있다고 우려한 듯하다.

그러나 사실상 배급제의 부활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국가경쟁력을 후퇴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 전영숙(가명·46·여) 씨는 “새 배급제도는 일거리 없는 직장에 나가 시간만 때우던 건달 같은 사람들에게만 환영받고 있다”며 “당이나 군, 행정기관 등에서 일하는 체제유지 요원들이 가장 큰 수혜자”라고 전했다.

북한이 직장을 이탈한 노동력을 복귀시키더라도 이에 걸맞게 산업 가동률을 올리지 못한다면 결국 노는 주민들을 먹여 살리게 돼 국가의 부담만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장마당도 존폐 기로=한편 북한에는 “다음에 손볼 대상은 장마당 공업품 판매”라는 소문이 전역으로 퍼져 장사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식량 배급이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라서면 장마당을 폐쇄하고 공업품을 국영상점에서 위탁판매토록 의무화한다는 것. 실제 장마당 인근에 있는 국영상점들에서는 몇 년 전부터 시범적으로 장사꾼들의 공업품을 넘겨받아 위탁가격으로 팔고 일정한 양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형태를 일반화할 경우 음지에 있던 암시장이 양지에 나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시장경제 마인드’는 갈수록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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