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처폐지는 일하지 말란 얘기" VS " 정책아닌 정권홍보"

  • 입력 2005년 11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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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국정 홍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국정홍보처 폐지 법안 제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대안 매체’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언론학자들은 그동안 국정 홍보가 본연의 뜻대로 이뤄졌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정홍보처 존폐 논란=노 대통령은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국정홍보처가 주관한 정책고객관리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에 홍보를 못하게 하는 것은 일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부의 홍보 기능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해야 정책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홍보처 폐지 법안을 대표 발의한 한나라당 정종복(鄭鍾福) 의원은 6일 “정책 홍보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여당의 대변인처럼 야당을 공격하는 정권 홍보를 하는 국정홍보처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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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강화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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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李載景)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민주주의를 위해 정책 홍보는 필수적이지만 국정홍보처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갉아 먹고 있다”며 “일부 간부가 국민 대신 자기의 정치적 후견인을 위해 홍보하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에 국정홍보처 폐지 같은 불필요한 논란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안 매체 신설 논란=노 대통령은 이날 “현재 우리의 정책 홍보 환경은 그리 좋지 않다”고 전제한 뒤 “적절한 대안 매체를 만들고 제도 매체(기존 매체)가 의제화하지 않는 것을 의제화하고 잘못된 보도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 홍보에 주력하는 대안 매체가 과연 비판과 감시라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김종민(金鍾民)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은 6일 “대안매체 발언은 별도로 매체를 만든다는 취지가 아니라 정부와 국민 간 의사소통 채널을 다양화하자는 것”이라며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고객관리(PCRM·Policy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서비스와 국정브리핑을 강화하는 것 등이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윤영철(尹榮喆)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안 매체’에 대한 언급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홍보하겠다는 뜻이라면 괜찮지만 특정 매체만 이용하겠다는 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민심을 읽는 홍보는?=노 대통령은 또 “표피에 흐르는 민심과 저류를 흐르는 민심이 항상 같지 않기 때문에 심층의 민심을 잡을 수 있는 정책 홍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21세기에, 국민은 독재시대에 머물러 있다” “민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는 조기숙(趙己淑) 대통령홍보수석의 발언이 드러내듯 정부가 민심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반대 여론에 귀 기울이지 않는 상황에서 민심에 기반한 정책 홍보가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제기된다.

김무곤(金武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그동안 정책 홍보가 안 된 것을 국민의 수준 탓으로 돌린 것은 아닌지 정부 스스로 반성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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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공보처 출발… 정권따라 통폐합-신설▼

■국정홍보처 오욕의 역사

존폐 논란에 휩싸인 국정홍보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폐합과 신설이 반복됐고, 때로 ‘정권의 나팔수’로 불리기도 하는 등 오욕(汚辱)의 역사를 갖고 있다. 정권 홍보를 전담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수많은 외풍(外風)이 불어왔던 것.

국정홍보처의 역사는 1948년 11월에 탄생한 공보처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공보처는 비서실과 공보국, 출판국, 통계국, 방송국 등 1실 4국 체제였다. 이 중 방송국은 당시 국영방송을 직접 관리하고 통제하던 기구.

1956년 2월 공보처가 폐지되고 대통령 소속의 공보국으로 바뀌었다가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6월 공보부로 변모했다. 이후 다시 문화공보부(문공부)로 개편돼 1990년 1월까지 29년간 유지됐다.

문공부 장관은 정부의 문화 관련 정책을 총괄하면서 정부 대변인 역할까지 했다. ‘정권의 나팔수’라는 악명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전두환(全斗煥) 정권 시절의 문공부는 홍보조정실을 통해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시달하는 등 언론 통제의 첨병 역할도 했다.

김영삼(金泳三) 정부는 1990년 1월 문공부를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했다. 하지만 공보처도 ‘정권홍보의 전위대’라는 비난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공보처가 언론 통제의 중심적 역할을 해 왔다”며 ‘공보처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 집권과 동시에 공보처를 폐지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폐지 1년 3개월 만인 1999년 5월 국정홍보처를 신설해 사실상 공보처를 부활시켰다. 대신 언론매체에 대한 관리기능은 문화관광부에 남겨뒀다.

공보처 부활은 체계적인 국정홍보가 필요하다는 게 명분이었다. 이에 야당 측에서는 “집권하고 보니 정권 홍보, 언론 통제 담당 기구가 필요했던 모양”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똑같은 논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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