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관객]한국 공연계 이끄는 2000명의 힘!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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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의 ‘로열 관객’이 공연계를 움직인다. 10월 이후 한국 공연계에는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국내 초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등 굵직한 이벤트가 잇따르고 있다. 사상 최고의 티켓 가격(R석 45만 원·베를린 필)과 나흘간 16시간 연속 공연(니벨룽의 반지)이라는 조건에도 객석은 찼다. 바로 공연 티켓을 ‘선(先)구매’하고 지속적으로 공연장을 찾는 로열 관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로열 관객은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은 반드시 챙겨볼 만큼 충성도(Loyal)가 높고, 꼭 봐야할 공연이라면 가격을 따지지 않는(Royal) 팬들이다. 예술의 전당 안호상(安浩相) 예술사업국장은 “티켓 구입 추이나 고정회원 등을 분석해 볼 때 클래식, 무용, 오페라 등 순수예술 분야를 지탱해 주는 충성도 높은 관객층이 장르별로 2000명 내외 존재하며,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로열 관객의 힘

로열 관객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은 주요 공연의 조기 예매 때다.

7, 8일 내한 공연을 갖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의 경우 7월부터 티켓 조기 예매를 실시했다. 첫날 718명이 티켓을 구입하는 등 한 달간 전체 좌석(5064석)의 절반인 2248장이 팔렸다. 두드러진 현상은 가장 비싼 R석과 가장 싼 C석의 매진이라는 ‘양극화’. C석의 경우 매진 뒤에도 취소 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문의가 폭주해 ‘대기자 리스트’가 마련됐다. 조기 판매된 티켓은 모두 기업체의 단체 구매가 아닌 순수 개인 구매였다.

10월 열린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연속 공연도 개인 구매가 많았다. 기획사인 CMI 측은 “바그너 오페라는 대중성이 적어 기업체의 협찬도 거의 얻지 못했다”며 “스스로 돈을 주고 표를 산 관객들이 객석을 채워 놀랐다”고 말했다. 나흘간 공연을 모두 보는 최고 100만 원짜리 ‘패키지 티켓’도 1500장 이상 팔렸다.

지난달 발레 ‘스파르타쿠스’로 13년 만에 내한 공연한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공연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4∼7월 조기 예매 때 판매된 개인 티켓 수량이 사실상 무용 분야 고정 관객 수”라며 “대략 1000∼1500명 정도”라고 밝혔다.

안호상 국장은 “로열 관객이 전체 관람권의 25∼30%를 선 구매해 주기 때문에 적자 위험도를 줄일 수 있다”며 “이들 덕분에 유명 공연만이 아닌 새로운 레퍼토리도 과감히 기획할 수 있기 때문에 공연 관계자들은 로열 관객들을 정성스레 관리한다”고 말했다.

예술의 전당은 고객 2만 명의 티켓 구매 성향을 분석해 무용, 오페라, 클래식, 연극 등 장르별 로열 고객을 찾아내 집중 관리한다. 장르별로 2000∼3000명인 로열 고객에 대해서는 새 공연이 열릴 때마다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내 공연 정보를 주고 티켓 우선 구매, 좌석 선택권, 할인 혜택 등을 준다.

○ ‘2030’ 여성이 지탱하는 순수 예술

한국 로열 관객의 또 다른 특성은 ‘젊다’는 것. 내한 공연을 갖는 세계적인 공연예술단체들은 너나없이 “장년층 관객이 주류를 이루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관객들이 너무 젊다”며 놀란다.

실제 우리나라의 로열 관객은 연령대로는 20, 30대, 성별로는 여성의 비율이 높다. ‘20, 30대 여성이 없으면 공연 못 올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공연기획사인 크레디아가 자체 유료 회원인 ‘클럽 발코니’ 회원 3000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 30대가 77%, 여성은 65%였다. 예매 사이트인 티켓링크가 소속 회원 40만 명을 분석한 자료에도 티켓을 많이 구매한 층이 20, 30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클럽 발코니’ 담당자 김지연 씨는 “대부분 회원들은 기다렸던 공연의 경우 다른 곳에 쓸 돈을 아껴서라도 좋은 좌석을 우선적으로 찾는다”고 말했다.

○ 쌍방향 참여에 나서는 젊은 관객들

흔히 ‘중장년층의 오락’으로 여겨지던 클래식이나 오페라 분야에서 20, 30대가 새로운 관객으로 부상하면서 인기 연주자를 대중문화 스타처럼 따라다니는 새로운 ‘팬덤 문화’도 생긴다. 특히 지역을 초월해 활동하는 각종 ‘인터넷 동호회’들은 각 장르 공연의 고정 관객층을 형성한다.

클래식 음반이나 연주회의 평이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고 클래식’의 회원은 이미 10만 명을 넘어섰다. 부산 지역 공연 보기 동호회인 ‘뮤클(Musical & Classic)’은 ‘뮤클 원정대-베를린 필하모닉’을 모집해 44명이 C석을 단체 구입한 뒤 함께 차를 타고 상경해 베를린 필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다.

쌍방향성 매체인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은 수동적인 관람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문화 생산자’로 참여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공연마다 소수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데 최근 공연한 ‘돈키호테’의 경우 4명 모집에 34명이 몰렸다. ‘돈키호테’ 공연 자원봉사를 했던 하윤진(19·중앙대 불어불문학과 1학년) 씨는 “공연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직접 예술 현장에 참여한다는 점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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