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발의 차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미사일 추진체를 싣고 가던 트럭에 불이 나고 폭발사고가 일어나기 몇 분 전 탄두를 실은 트럭 2대가 터널을 빠져나갔다.
두 트럭이 모두 터널 안에 있었다면 대형 폭발사고로 이어져 터널 안에 있던 차량 100여 대와 사람들이 모두 참변을 당하고 터널은 붕괴될 수도 있었다.
▽사고 순간=1일 오후 미사일 추진체를 싣고 대구 달성군 구마고속도로 대구 방향 달성제2터널 안을 달리던 트럭 운전사 박성수(31) 씨는 “갑자기 왼쪽 뒷바퀴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나 차를 세워 살펴보니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그는 트럭에 탑승한 공군 호송관과 함께 소화기로 불을 끄려다 여의치 않자 포기하고 뒤따르던 차량 운전자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급히 터널을 빠져 나왔다.
▽아수라장된 터널 안=폭발사고가 발생한 지 4시간이 지나 연기와 분진이 빠져나간 뒤 터널 안은 포탄을 맞은 듯한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터널 곳곳에는 차량 부품, 유리 파편, 천장의 전기시설물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사고 트럭은 완전히 불에 타 철 구조물만 앙상하게 남았다.
화물차에 실려 있던 미사일 부품 중 일부는 구겨진 채 터널 바깥 500m까지 날아갔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터널 안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 등 100여 대와 불탄 트럭은 사고 발생 5시간 만에 모두 견인했다”며 “현장 감식과 사고 원인 조사가 끝나더라도 내부 청소와 안전점검을 마쳐야 하므로 2일 오후 늦게나 터널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도로공사는 이날 오후 6시경 마산 방향의 차량 통행을 재개했지만 대구 방향 차량은 국도로 우회하도록 했다.
▽‘바람’이 참사 막았다=불이 났을 때 마침 차량 진행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연기와 불길이 앞쪽으로 쏠렸다.
사고는 총길이 993m의 터널을 500m가량 지난 지점에서 불이 났다. 맞바람이 불었다면 뒤따르던 차량 쪽으로 불길과 연기가 번질 뻔했다.
터널에 설치된 도로공사 폐쇄회로(CC)TV 화면에는 사고 차량에서 불길이 치솟자 다른 미사일 추진체를 실은 트럭이 비상등을 켜고 후진해서 불길을 피하는 장면이 잡혔다.
▽수사=경찰은 사고 트럭 운전사들이 “미사일 추진체와 탄두를 싣고 간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함에 따라 공군 호송관 등을 대상으로 민간 트럭이 군용 폭발물을 수송한 경위와 안전수칙 이행 여부를 조사키로 했다.
경찰은 또 브레이크 라이닝이 가열돼 타이어가 펑크 나면서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정비 불량 등 운전사 과실 여부를 가리기로 했다.
하지만 인명 피해가 없는 교통사고의 경우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한 상태면 공소권이 없어 형사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軍 호위차량도 없이 미사일 수송▼
1일 발생한 나이키 지대공 미사일의 추진체 폭발사고로 군 당국의 허술한 무기 수송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군 당국은 폭발성이 높은 무기를 장거리 수송하면서 호송 차량도 배치하지 않았고 수송 차량의 사고에 대비한 소화장비도 충분히 갖추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점=군 당국에 따르면 이날 대한통운 소속 15t 트럭 4대 중 2대에는 공군 나이키 미사일의 추진체가 2개씩, 나머지 2대에는 미사일 탄두가 2개씩 각각 실려 있었다.
나이키 미사일의 추진체에 들어 있는 고체연료는 불이 붙으면 폭발하지 않고 급속히 연소되기 때문에 폭발사고는 아니라는 게 군 당국의 주장이다. 공군은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탄두와 추진체를 분리해 이송했고 차량 이동 시간도 다르게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체연료는 폭발성이 없다는 공군의 주장과 달리 터널 내 폐쇄회로(CC)TV에는 폭발 당시 엄청난 충격으로 트럭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파괴된 장면이 찍혔다. 당시 폭발로 추진체의 파편이 수백 m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발화 가능성이 높은 미사일 추진체를 민간 트럭으로 수송한 것에 대해 군 관계자는 “군용물자 수송에 관한 국군수송운용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군을 비롯한 각 군의 무기와 군수물자 수송은 대한통운이 상당 부분 맡고 있다.
하지만 군 당국이 별다른 안전대책 없이 폭발성 높은 무기를 민간차량으로 수송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사고 트럭 등에는 운전사와 공군 호송관 1명씩만 동승했다. 이들 트럭엔 ‘폭발물’ 표지만 붙어 있었을 뿐 호송 차량이나 경계 차량 등은 함께 운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수송 트럭의 적재함엔 비닐포장만 덮여 있었을 뿐 폭발 등 충격에 대비한 안전장치는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다. 폭발 직전 사고 트럭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탑승자들이 차량에 있던 소형 소화기로 초기 진화에 나섰지만 거센 불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사고 트럭에 실려 있던 추진체의 무게는 7∼8t 안팎으로 과적(過積)이 아니었음에도 운행 중 갑자기 트럭의 제동장치가 파열된 것은 정비 불량이나 차량 결함이 원인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1950년대 미국에서 개발됐으며 한국에는 1965년 처음 도입된 뒤 현재까지 공군에서 운용 중이다. 그러나 40년 넘게 운용하다 보니 장비 노후화로 사고가 잇따랐다.
1998년 12월 인천기지에서 발사시스템 회로 고장으로 오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파편에 맞아 6명이 부상하고 차량 110여 대가 파손됐다. 1999년에는 충남 대천사격장에서 화력시범 도중 1기가 잘못 발사돼 공중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군 당국의 조사 결과 나이키 미사일의 발사 작동률이 8∼30%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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