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배급제 재개 배경]식량 자신감이냐 시장경제 후퇴냐

  • 입력 2005년 8월 31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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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10여 년 동안 사실상 붕괴 상태에 있던 식량배급제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정확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다시 배급제 정상화에 나설 만큼 식량지급 능력을 확보했는지도 의문이고, 이 같은 움직임이 그동안의 시장경제 드라이브를 되돌리려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북한의 자신감 회복?=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발표한 뒤 공업 및 농업분야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해 왔으나 배급제만은 공식 폐지하지 않았다. 배급제만큼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간주해 온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국제사회의 추가 식량지원이 없으면 1990년대 중반처럼 대량 아사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세계식량계획(WFP)의 거듭된 경고가 있었지만 북한의 식량사정은 그리 위험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 남한의 대북 식량지원이 이뤄진 데다 올해 작황도 그리 나쁘지 않다.

당초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89만 t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남측에서 50만 t의 식량이 지원됐고 중국에서 15만 t, 미국에서 5만 t, 국제기구에서 10만 t이 추가 지원될 예정이다. 그 결과 실제 식량 부족분은 수요량의 5%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南成旭) 교수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포함할 때 올해는 지난해보다 20만 t가량이 늘어나는 셈”이라며 “이만한 식량이면 1년은 충분히 배급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부 결속용?=배급제 정상화는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한 일시적 조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올해 초 신년사설에서 “농업은 사회주의 건설의 주공전선”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전국의 주민들이 올해 농사에 총동원됐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올해도 배급제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김 위원장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게 된다.

배급제 재개 시점을 10월 1일로 정한 것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0돌을 맞아 분위기를 최대한 고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북한은 노동당 창건 60돌을 앞두고 평양에서 ‘아리랑’이라는 대규모 기념공연을 개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방 주민들까지 적극 참관시키면서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과의 핵 갈등을 조기에 매듭짓고 외부에서 대규모 식량지원을 받을 궁리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배급제 정상화 움직임은 북핵 6자회담의 타결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지원을 계산한 사전 준비 조치일지 모른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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