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이곳엔 태화궁(太和宮)이 있었는데 대한제국 말 고종이 군부대신을 지낸 이윤용에게 하사(下賜)했다. 이후 명성황후 집안인 민규식 자택,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옥 등을 거쳐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잠시 국회의장 공관으로 사용됐다. 총리 공관이 된 것은 1961년 송요찬 내각수반이 총리급으로 이곳에서 집무하면서부터. 인근에 북악산과 삼청공원이 있어 풍광(風光)이 뛰어나다. 조선 성종 때 학자인 성현은 서울에서 제일 아름다운 장소로 이곳을 꼽았다고 한다.
▷하지만 터가 아름답다고 주인의 심성(心性)까지 맑아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공관에서 열리는 당정회의나 기자간담회 등에서 이해찬 총리가 종종 부적절한 말을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리는 “현재의 시도지사 중엔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 정치적으로 나는 고수(高手)고 손(학규) 경기지사는 아래도 한참 아래다”라고 했다가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런 이 총리가 또 듣기 거북한 말을 했다. 8·15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한대표단을 초청해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다. 그는 “20년간의 민주화 투쟁 속에서 군부독재를 청산하지 않고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총리 공관은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역대 총리는 모두 총리 공관을 불법 점거했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국민이 힘을 합쳐 이룩한 민주화를 두고 마치 자신들만의 업적인 것처럼 말하는 이 총리의 오만이 공관을 더 오염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송 영 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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