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조선인 징용희생자 유골조사 시늉에 그쳐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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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주소도 없이…일본 총무성 자치행정국이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조선인 강제징용희생자 유골 실태 조사에 관한 ‘정보 제공 의뢰’ 문서. 사업소재지 일람표가 첨부돼 있지만 대부분 기업명도 없고 소재지도 ‘불명’이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이름도 주소도 없이…
일본 총무성 자치행정국이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조선인 강제징용희생자 유골 실태 조사에 관한 ‘정보 제공 의뢰’ 문서. 사업소재지 일람표가 첨부돼 있지만 대부분 기업명도 없고 소재지도 ‘불명’이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9일 공개된 일본 정부의 조선인 징용희생자 유골 조사 의뢰 문서는 과거사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의 ‘말’이 얼마나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지난해 12월 한일 정상회담 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징용희생자 유골 반환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자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양국 실무자들은 올해 5월 25일 도쿄(東京)에서 만나 △인도주의 △현실주의 △미래지향 등 조사 3원칙에 합의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6월 20일 정상회담 때도 징용자 유골 반환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인도적 관점에서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바로 이 날짜로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들에게 보낸 ‘조사 의뢰’ 문서는 철저하게 겉치레에 불과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본 정부가 각 지자체에 보낸 ‘의뢰’ 형식의 공문서는 우선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중앙정부가 각 도도부현(都道府縣)에 보내는 공문서 형식에는 훈령(訓令), 통지(通知), 통달(通達), 의뢰 등이 있다. 훈령, 통지, 통달은 직무명령에 해당하나 ‘의뢰’는 구속력도 의무도 없다.

중앙정부의 조사 의뢰에 대해 각 지자체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사카(大阪) 부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지난달 말 오사카 부에 “유골조사 요청을 하려는데 담당 부서를 알려 달라”고 문의했으나 “담당부서는 미정”이란 답을 받았을 정도다. 조사단 관계자들은 “조사 의뢰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은 마치 광고전단지를 받아본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한국인 측 중앙본부 홍상진(洪祥進) 사무국장은 “의뢰라는 용어는 바꾸어 말하면 유골에 관한 조사를 해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이 된다”고 평했다.

▽이름도 주소도 없는 자료=일본 정부가 각 지자체에 내려 보낸 징용자의 고용 기업 명부도 마찬가지다. 612개사의 기업을 현별로 나눠 기재했지만 기업 이름은 하나도 없다.

일본 전국에서 가장 많은 15만여 명의 한국인 강제연행자가 탄광 등에서 혹사당했던 후쿠오카(福岡) 현의 경우 78개 기업에 대한 자료를 첨부해 놓고는 있다.

그러나 업종만 표시돼 있을 뿐 기업명은 없으며 주소지마저 시정군(市町郡)까지만 기재돼 있다. 26개 기업은 주소지를 아예 ‘불명(不明)’이라고 처리했다. 이름도, 주소도 주지 않고 사람을 찾아 달라는 셈이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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