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2년 고무신 첫 등장

  • 입력 2005년 8월 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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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층의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 고무신에 얽힌 추억을 한 가지씩 갖고 있을 것이다. 마땅한 장난감이 없어 고무신 한 쪽을 접어 다른 쪽에 쑤셔 넣고 장난감 장갑차를 만들어 모래밭에서 놀던 일, 간식거리가 마땅치 않아 헌 고무신을 훔쳐 엿 바꿔 먹다 들켜 혼난 일 등….

1970년대에는 말표(태화) 왕자표(국제) 기차표(동양) 고무신이 유명했다. 고무신을 주종으로 한 우리나라 신발산업은 당시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톡톡히 효자 노릇을 했다. 더구나 일할 때 신기 편한 고무신은 경제개발시대에 열심히 일한 한국인들의 발 노릇을 해 주었다.

우리나라에 고무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2년 8월 5일이었다. 이날 대륙고무공업주식회사가 ‘대장군 표’ 고무신을 생산했으며 출시와 동시에 순종에게 진상했는지 순종이 고무신을 최초로 신은 한국인으로 기록됐다. 대륙고무가 1922년 9월 21일자 신문에 낸 광고에는 ‘대륙고무가 고무신을 출매함에 있어 이왕(순종)께서 이용하심에 황감함을 비롯하여 여관(女官) 각 위의 애용을 수하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당시 우리 업체는 전통적인 짚신(남자용)과 마른신(여자용)의 모양을 본떠 고무신을 만들었다. 고무신은 짚신보다 훨씬 질겨 오래 신을 수 있고 비가 내려도 물이 새지 않는 장점 때문에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고무신의 역사는 그 뒤 1932년 경성고무의 만월표 고무신과 1948년 국제상사의 왕자표 고무신으로 이어진다. 국제상사는 이후 운동화까지 생산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스포츠운동화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면서 고무신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밀린다.

여름철 산사(山寺)나 수도원 등을 방문해 본 사람은 거기에서 아직 고무신이 애용되고 있음을 접하고 마치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울 것이다.

지난해 9월 독일 괴팅겐에서 스님들이 신던 헌 고무신 1000켤레로 설치작품전을 열었던 희상 스님은 “고무신은 ‘모든 스님이 신는다’는 동일성과 ‘스님마다 각양각색의 구도(求道)의 흔적이 배어 있다’는 다양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진리는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휴가철 산사나 수도원(수련원)에서 고무신을 신고 진리를 한번 찾아보자.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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