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판철씨 ‘고엽제 비극’ 수기 펴내

  • 입력 2005년 7월 29일 03시 08분


코멘트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아들 셋을 연거푸 잃고 나니 더 이상 삶을 지탱할 힘이 없어지더군요. 고엽제의 무시무시한 파괴력 앞에 우리 부부의 삶은 잎사귀 하나 남지 않은 채 앙상하게 고사(枯死)해 버렸습니다.”

베트남전 참전수기인 ‘에이전트 오렌지’(미디어윌 발간)를 28일 펴낸 베트남전 참전용사 조판철(趙判哲·57·경남 창원시 북면·사진) 씨. 그는 224쪽의 책으로도 고엽제 후유증의 고통을 다 표현해낼 수 없었던 듯, 떨리는 목소리로 그동안의 아픈 기억들을 토로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6년 만인 1978년 첫아들을 낳았는데 두개골이 없는 기형으로 하루 만에 죽었어요. 1980년 둘째 아들을 가졌는데 역시 두개골이 없는 기형으로 엄마 배 속에서 죽은 채 나왔어요.”

1977년과 1982년 낳은 딸들은 정상이었고 건강하게 자라났는데 아들만 낳으면 기형이었던 것.

마침내 1989년 다시 아들을 낳았다. 이번엔 정상이었다. 그러나 생후 29개월 때 세균성 뇌막염이란 병에 걸려 2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경남대 영어교육과 1학년을 휴학하고 1969년 입대, 1970년 10월 백마부대원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조 씨는 22개월간 정글을 누볐다. 복학 후, 즉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5년가량 지나면서 잇몸이 무너지고 이가 하나둘 빠지며 여드름 같은 게 온몸에 돋기 시작했다.

두통과 극심한 위산과다 등 온갖 병들이 찾아오더니 40대 초반엔 이가 모두 빠져 틀니를 해야 했다. 제대한 뒤 고교 영어교사가 됐으나 병마 때문에 젊은 나이에 교직을 그만둬야 했다. 다행히 1993년 낳은 4번째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조 씨는 고엽제전우회 활동과 자원봉사 등을 하는 틈틈이 베트남에서 매일 썼던 메모를 토대로 참전수기를 써왔다.

이기홍 기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