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왜 DJ件만 액수언급 없나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8분


코멘트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삼성 측에서 정치자금을 받았을까. 받았다면 얼마나 받은 걸까.

국가안전기획부의 1997년 대선 전 불법 도청 테이프인 이른바 ‘X파일’에는 삼성 측이 여야 정치인과 검찰 간부 등에게 전달했거나 전달하려 한 돈의 규모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온다.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洪錫炫) 당시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 녹취록에 따르면 삼성이 여당 후보에게 돈을 준 액수가 상세하게 거론된다. “18개(18억 원)” “30개(30억 원)” 등의 얘기가 실감나게 나온다.

이들은 검찰 간부들 이름도 거명하면서 추석 떡값 명목으로 각각 500만∼2000만 원씩을 주기로 한다.

DJ에게 돈을 줬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 내용도 있다.

홍 사장은 이 실장에게 “DJ가 회장께 편지를 보내 왔다. 특별한 내용은 없는 것 같다. 단지 호의에 대한 감사의 내용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이회창(李會昌) 쪽은 보안이 안 된다. 반면에 우리가 지난 번 ‘늙은이(DJ)’에게 한 것은 일절 얘기가 안 나온다”는 얘기도 했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당시 삼성은 DJ 측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했고, 그 ‘중간 다리’ 역할은 홍 사장이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비밀’은 1999년 천용택(千容宅) 당시 국정원장이 “1997년 홍 사장이 DJ를 방문해 상당한 액수의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발설하면서 꼬리가 드러날 뻔했다. 천 전 원장은 당시 ‘정치자금법 개정(1997년 11월 14일 시행) 이전’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불법적인 정치자금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녹취록에는 삼성이 DJ 측에 건넨 돈의 액수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홍 사장이 다른 정치인이나 검찰 간부 등에 대해선 500만 원 단위까지 언급하면서 유독 DJ와 관련해서는 액수를 전혀 밝히지 않은 이유가 뭘까.

정치권과 검찰 일각에선 녹취록에 끝내 삼성 측이 DJ 측에 제공한 자금 규모가 나오지 않는 배경에 대해 “X파일 내용의 최대 의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또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편 DJ 측 최경환(崔敬煥) 비서관은 24일 “김 전 대통령이 정치를 해오면서 불법자금을 받고 거래하고 했으면 견딜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