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서기 64년 로마 대화재

  • 입력 2005년 7월 18일 03시 14분


코멘트
서기 64년 7월 18일 밤 로마.

전차 경기장 근처 상점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한낮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는 여름밤. 불길은 바싹 메마른 도시를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좁고 구부러진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차례차례 집어삼켰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피해 다닐 뿐 속수무책이었다.

불은 6일 만에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다시 사흘을 더 갔다. 제국의 수도 로마는 그렇게 잿더미가 됐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로마의 대화재. 그 원인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당시 황제였던 네로가 끊임없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당대의 역사가 타키투스(55?∼117?)는 “흉한(兇漢)들이 불을 못 끄게 막았고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듯 횃불을 던져댔다.…황제는 불타는 로마를 보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기록했다.

네로는 로마에 ‘황금 궁전’을 건설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귀족과 원로원이 반대하자 일을 쉽게 끝내기 위해 아예 다 태워버리는 방안을 선택했다는 그럴싸한 설명이 붙었다.

정작 황제는 화살을 기독교에 돌렸다.

“‘시리우스별이 뜨는 날 거대한 악(惡)의 도시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기독교도가 고의로 불을 질렀다.”

진실은 무엇일까.

당시 로마는 인구 200만 명의 대도시. 기록에 따르면 하루에도 수십 건의 작은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대화재의 원인이 고의적인 방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네로를 둘러싼 논란은 정치적인 냄새가 풍긴다. 네로를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기록을 남긴 타키투스는 화재 당시 열 살도 채 안됐다. 네로와 맞서던 귀족사회와 원로원의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썼을 가능성이 높다.

2000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도 화재의 원인은 추측 수준에서 한 걸음도 못 나간다.

그렇다면 결과는?

1999년 로마에서 열린 ‘네로 복권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미국 프린스턴대 에드워드 챔플린 교수는 “좁은 도로가 미로처럼 얽혔던 로마는 화재 덕분에 넓은 도로와 광장, 대형 건축물이 들어선 계획적인 대도시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후세 로마인들은 선조들이 입은 재앙에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