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과징금…정통부 “조정 불가피” 공정위 “담합제재 당연”

  • 입력 2005년 5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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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부의 행정지도에 충실히 따른 KT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1159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정부의 원칙 없는 행정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 쪽(정통부)에서는 행정지도라는 이유로 통신업계의 가격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다른 쪽(공정위)에서는 이를 담합으로 규정해 제재를 하니 업계로서는 어느 부처의 결정을 따라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특히 공정위가 다른 부처의 행정지도 결과를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부처 간 ‘엇박자’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 KT “누구를 따라야 하나”

공정위는 KT와 하나로텔레콤의 담합 행위에 대한 브리핑에서 정통부의 행정지도는 2002년 11월 끝났기 때문에 2003년 6월 이뤄진 양사의 담합 행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행정지도의 ‘내용’이 아니라 ‘시점’에 대한 설명뿐이었다.

하지만 본보 취재에 따르면 정통부는 두 회사가 서명한 합의서의 내용을 직접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개입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정통부가 작성한 합의서는 공정위가 담합으로 규정한 모든 사안을 포함하고 있다.

KT 측은 행정지도가 끝난 2003년 상반기 하나로텔레콤과 여러 차례 만나 협의를 한 것은 정통부의 행정지도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KT 관계자는 “주무부처인 정통부의 행정지도가 가격 담합의 계기가 됐고 KT는 이를 따랐을 뿐인데 공정위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반박했다.

정통부는 이날 공식 논평을 내고 “공정위 심결 결과에 대해 아쉽다”고 밝혔으나 ‘행정지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 대법원에서 번번이 깨지는 공정위

공정위는 그동안 행정지도를 통해 가격이나 거래 조건을 정하도록 하는 ‘관제 카르텔’을 적극 단속해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정위 결정을 번복하는 사례가 많았다.

대법원은 올해 2월 11개 손해보험사가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이들 손보사의 손을 들어줬다.

손보사들은 2000년 4월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를 받아 자동차보험료를 조정했다가 공정위로부터 담합으로 판정받아 7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대법원은 작년 4월에도 공정위가 OB 하이트 등 맥주 제조업체들에 대해 부과한 12억 원의 과징금 부과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들 맥주회사는 1998년 재정경제원의 행정지도를 받아 맥주가격을 10% 공동으로 인상했다가 공정위로부터 담합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이달 초에는 교학사 두산동아 등 국내 주요 참고서 출판업체로 구성된 학습자료협회와 회원사들에 대해 “2003년 6월 문화관광부의 가격 인상 자제 협조 요청을 계기로 참고서 값을 담합 인상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1억5200만 원을 부과했다.

○ 부처 간 엇박자 논란 계속될 듯

공정위는 앞으로도 예외를 인정받을 만한 담합이 아니면 제재를 한다는 방침이다. 업체 간 담합이 예외로 인정받는 경우는 공정위의 사전 허가를 받거나 법령에 근거한 행정지도 등 두 가지뿐이라는 것.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 규제가 많은 상황에서 기업에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혼선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앙대 홍기택(洪起澤·경제학) 교수는 “원칙 없는 행정으로 기업들을 옥죄면 기업들이 정상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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