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출받아 오뎅전문점 낸 이광주씨 다짐

  • 입력 2005년 5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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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픈 예정으로 마무리 내부 공사가 한창인 어묵, 꼬치구이전문점 앞에서 등을 손질하고 있는 이광주 씨. 김선우 기자
30일 오픈 예정으로 마무리 내부 공사가 한창인 어묵, 꼬치구이전문점 앞에서 등을 손질하고 있는 이광주 씨. 김선우 기자
“이번엔 정말 다시 일어나야죠.”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프랜차이즈 어묵, 꼬치구이 전문점을 30일 새로 여는 이광주(李廣柱·46) 씨는 재기의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이 씨는 20일 우리은행에서 2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3월 발표된 정부의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 중 영세 자영업자 신규대출 정책에 따른 우리은행 대출의 첫 수혜자다.

26일 오전 인테리어 공사 중인 가게 앞에서 만난 이 씨는 “기회를 잘 살려서 꼭 재기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13년간 음식점을 경영한 베테랑이지만 2003년 연속되는 불운으로 신용불량자가 됐다.

가전제품 영업사원이었던 이 씨는 1992년 생고기와 감자탕을 취급하는 음식점을 열었다. 장사는 잘 됐다. 외환위기 때도 3000원짜리 점심 메뉴를 개발해 불황을 잘 넘겼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주변에 대형 고깃집과 감자탕집이 대거 들어서자 20평, 50석 규모의 식당으로는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다.

2003년 5월 이 씨는 보신탕집으로 업종을 바꿨다. 지방에서 싼값에 고기를 사와 탕 한 그릇을 6000원에 팔았다. 업종 변경은 성공적이었다.

불행은 그해 말복 즈음 찾아왔다. 중국에서 식용 개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죽이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자 손님들은 발걸음을 끊었다.

고민 끝에 같은 해 12월 치킨 호프집으로 다시 메뉴를 바꿨다.

개점 보름 만에 조류독감이 동남아시아를 강타했다. 하루 80만∼90만 원 하던 매상이 20만 원대로 뚝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부 인테리어 공사비용으로 지불한 카드 결제 대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연체 한번 안했던 이 씨는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4100만 원을 빚 진 신세가 됐죠. 그해 겨울을 아내, 두 딸(10세, 7세)과 난방 없이 지냈습니다. 가스도 안 들어오고 수도도 곧 끊겼어요. 파출부 일을 나가던 아내가 ‘죽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계속했다. 불황과 겹쳐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04년 10월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를 찾아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그에게 매달 내야 하는 72만 원은 너무 많았다.

“한두 번 내다가 못 냈습니다. 다시 업종을 바꿔 보려고 하는데 재수 좋게 정부 대책이 나오고 주채무은행인 우리은행에서 연락이 왔죠.”

생계형 자영업자가 대출받을 수 있는 최고금액인 2000만 원을 받은 이 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업종을 변경할 때만 대출을 해 주는 우리은행의 프로그램과 이 씨의 계획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8년 동안 대출금 2000만 원을 갚아 나가게 된다. 대출금은 첫 1년은 매달 이자(연 8%) 13만3000원만 내고 2년째부터는 원금을 균등 분할해 상환한다. 이와 별도로 과거 내지 못했던 72만 원을 매달 신복위에 내야 한다.

대출 심사를 맡았던 우리은행 권석철(權錫哲) 심사역은 “무엇보다도 이 씨의 강력한 재기 의지가 대출 승인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이 씨 식당 근처에 있는 영업점 4곳의 직원들을 서포터스로 지정해 되도록이면 회식을 그곳에서 하도록 할 방침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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