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권오혁]전문대학원, 서민 자녀에겐 ‘그림의 떡’

  • 입력 2005년 5월 25일 0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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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정권의 화두는 늘 개혁과 진보다. 특히 기득권층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소재가 되어 왔다. 그런데 개혁의 결과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는 것일까?

김대중 정부 시절 대표적인 개혁 과제로 추진된 의약분업과 관련해 정부는 의약분업이 ‘항생제 과다 투여’를 막기 위한 방책이라며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들고 나왔다. 하지만 제도 시행의 결과 일반 시민의 의료비 부담만 두 배로 늘어났을 뿐 항생제 판매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병원들이 항생제를 많이 팔아 매출을 높이려 한다’는 현실 진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과잉 진료를 통해 매출을 올리고자 한다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같은 값비싼 진료를 해야지, 항생제 몇 알 더 판다고 도움이 되겠는가? 국내에서 항생제가 과용되고 있는 것은 부작용을 무릅쓰고라도 빨리빨리 낫기를 원하는 환자들의 성향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당시 정책토론도 충분치 못했다. 국민 건강이라는 엄청난 대의명분 앞에 일부 지식인들과 관련 단체의 문제 제기는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 지키기로 매도되었다.

요즘 추진되고 있는 법학, 의학전문대학원의 신설도 의약분업의 전례를 반복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부분의 국민이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과 효과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국민에게 두루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반인은 그저 서민들을 위하고 선진적인 제도를 정착시키려는 작업을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렇다고 정책의 추진 과정이 관련 전문가나 이해당사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개혁정책에 전문가나 이해당사자들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 경우 개혁 저항세력 혹은 기득권층의 이익 지키기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그런데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좋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또다시 서민을 울릴 것 같다는 사실이다. 의학 혹은 법학전문대학원은 매우 값비싼 교육제도이다. 전문대학원들은 최소 3년간 연 2000만∼3000만 원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서민들에게 이는 너무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서민의 자식들은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길을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코리안 드림’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 새로운 제도가 의료와 법률 서비스 수준을 높일 수 있을지도 논란거리이지만 부유층 자제들만이 변호사, 의사가 되는 ‘계층의 대물림’을 낳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최근의 주요 개혁 정책은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면 정당성이 스스로 부여되는 것이 특징이다. 개혁 주체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마지막 단계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요구가 끼어드는 추진 과정도 일반화되었다. 이를 통해 정권은 개혁이라는 성과를 올리고 이해당사자들도 나름대로 이익을 챙기지만 다수 국민의 권익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는 기묘한 현상이 거듭되고 있다.

권오혁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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