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숨겨진 딸’ 숙제]국정원 동원했다면 직권남용죄

  • 입력 2005년 4월 21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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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딸’의 아파트스스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라고 밝힌 김모 씨가 살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모 아파트의 현관문 앞에서 기자들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숨겨진 딸’의 아파트스스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라고 밝힌 김모 씨가 살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모 아파트의 현관문 앞에서 기자들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9일 방영된 SBS ‘뉴스 추적’을 통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을 관리하는 데 국가정보원 간부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통령의 사생활 관리에 공무원이 동원된 경우 이들이 수사와 처벌 대상이 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또 MCI코리아 부회장이었던 진승현(陳承鉉) 씨가 국정원 간부에게 건넨 돈의 사용처 등을 규명하지 못해 부실수사 논란을 빚었던 2000년 11월의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됨으로써 검찰이 재수사에 나설지도 관심이 모아진다.

▽국가기관이 대통령 ‘사생활’에 동원됐다면=국정원 간부들이 대통령의 딸을 관리하는 임무인 이른바 ‘특수사업’을 수행하는 데는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국정원 간부들이 자발적으로 특수 임무를 수행했을 개연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사업을 지시한 사람의 경우 몇 가지 조건을 갖추면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범죄’이다.

따라서 직권남용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지시를 한 사람이 공무원이어야 한다. 즉 지시를 한 사람이 김 전 대통령이나 청와대 관계자, 국회의원일 경우 적용될 수 있지만 흔히 ‘여권 실세’로 불리는 공직을 맡지 않은 정치인일 경우에는 직권남용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공무원일 경우에도 특수사업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뉴스 추적’에서 특수사업을 수행한 당사자로 지목된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2차장이나 정성홍(丁聖弘) 전 경제과장 등이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실적으로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한 변호사는 “만약 공직자가 ‘누구를 잘 보살펴 달라’고 말했다면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고 비난받을 수는 있겠지만 ‘진승현 씨한테 가서 돈을 받아와서 내 딸을 관리하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면 법정에서 유죄가 인정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사업을 수행한 당사자들 역시 처벌대상이 되기 힘들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통령의 딸을 관리한 행위가 국정원 요원의 임무는 아니지만 그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이들이 상사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요원의 임무가 아닌 일을 했다면 지시를 한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지 그 역할을 한 사람들은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 재수사 가능성은?=검찰은 재수사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검찰로서는 당시 국정원 간부들의 범죄 혐의 입증을 위해 해야 할 수사는 다했고, 이들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기에 재수사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즉 “받은 돈을 혼자 착복하지 않고 이러저러한 용도에 썼다”는 것은 피고인이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할 때 주장하는 ‘정상 참작사유’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소를 전제로 수사하는 검찰로서는 사용처를 둘러싼 의혹 때문에 재수사에 나설 수 없다는 것.

당시 수사를 맡았던 홍만표(洪滿杓)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은 “김은성 씨 등은 특수사업이라고만 주장했을 뿐 어떤 용도로 사용했다고 스스로 설명하지 않았고, 특수사업비 명목으로 받은 돈은 모두 현금이어서 계좌추적을 통해 규명키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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