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한국대학]지구촌 교육전문가 4人에게 듣는다

  • 입력 2005년 4월 11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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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장, 리처드 옐런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담당 국장, 김진표 교육부총리, 자밀 살미 세계은행 교육담당 국장. 안철민 기자
왼쪽부터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장, 리처드 옐런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담당 국장, 김진표 교육부총리, 자밀 살미 세계은행 교육담당 국장. 안철민 기자

《한국교육개발원과 세계은행은 6∼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고등교육재정 국제포럼’을 열고 대학개혁 정책의 국제 추세와 추진 전략 등에 대해 토의했다. 본보는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이종재(李宗宰) 한국교육개발원장과 국제포럼 참석차 방한한 자밀 살미 세계은행 교육담당 국장, 리처드 옐런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담당 국장을 6일 초청해 고등교육개혁 방안 등 교육 현안에 대한 좌담회를 가졌다.》

○ 선택과 집중 통해 대학의 경쟁력 향상 가능

▽사회=각국은 대학의 경쟁력 강화가 부국(富國)의 지름길이란 인식에 따라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옐런드=세계 각국이 대학 경쟁력 강화에 한층 역점을 두는 추세다. 고등교육은 OECD에서 경제발전의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급격히 늘고 있고 한국도 비약적 발전을 했다. 대학과 대학원 교육을 받은 사람이 크게 늘어나면서 각국이 고등교육 혁신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김진표=한국은 대학의 양적 팽창이 가장 빨랐던 나라 중 하나다. 대학 진학률이 81%일 정도로 대학교육이 보편화됐다. 경제발전의 원동력 역할도 했지만 최근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질 낮은 교육, 수도권 집중 현상, 특성화와 산학협력 미흡 등으로 교육 수요자와 기업의 평가가 낮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15개의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을 만들고 나머지 대학도 특성화하려고 한다.

▽살미=대학이 변하려면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교육의 질 평가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한국에 세계 100위 내 대학이 없는 것은 평가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양적 성공은 했지만 질적 성공은 이루지 못했다. 유럽에선 질적 평가 시스템을 갖추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발전한 나라가 중국이다. 다른 나라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진표=그래서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에 역점을 두고 있다. 대학 정보를 공개해 대학이 개혁하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통폐합, 대학간 빅딜도 있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수도 있다.

▽이종재=대학들은 정부가 너무 주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교수 1인당 학생 수 감축이나 통폐합을 구조조정의 최종 목표로 오해하기도 한다. 수만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고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에는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옐런드=대학정보 공개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정보는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정부가 엄격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허사다. 정부는 변화의 파트너이고 대학의 변신 노력이 결국 대학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끈질기게 설득해 동참시켜야 한다.

▽김진표=그래서 교육부도 대학평가를 담당할 고등교육평가원을 내년 중 설립하려고 한다. 정부와 대학으로부터 완전 독립된 형태로 운영하고 국내 기관뿐 아니라 OECD, 세계은행 등 국제기관과도 연계해 대학평가 업무를 맡기려고 한다.

○ 홍콩대학에선 비즈니스맨 총장 영입하기도

▽옐런드=한국은 교육 부문에 대한 공공재정 비율이 OECD 평균보다 낮다. 교육재정 확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쟁력 있는 학교에 연구비를 집중 투자해야 한다. 영국도 과거에는 백화점식 종합대를 육성했지만 지금 특성화로 가고 있다. 대학과 기업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만큼 산학을 연계한 재정지원 체제가 필요하다.

▽이종재=고등교육 투자가 빈약한 게 사실이다. 국내총생산(GDP)의 1%인 8조 원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4년제 대학 9653개 학과의 평균 전임교원은 4.9명이다. 교원 수가 적은 만큼 수업 부담이 너무 많다. 이런 여건에서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는 어렵다. 정부의 구조조정 핵심 목표는 학과별로 교육과 연구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정도의 학과 규모를 만들어 주는 데 있다.

▽김진표=국립대 구조조정은 교수 신분 문제와 연결돼 있어 저항도 있고 쉽지 않다. 특히 총장 직선제는 선출 총장이 다음 선거를 의식해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고 개혁 추진력도 떨어뜨리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살미=총장 선출과 관련해 세계적으로도 두 가지 경향이 있다. 대학 총장을 선거로 뽑기도 했으나 이제는 정치선거 풍토에서 분리되고 있다. 또 대학이 정부, 민간, 산업계 등 다양한 인사로 이사회를 구성해 대학의 평가와 전략을 수립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

▽옐런드=각계 인사로 구성된 대학 이사회는 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를 고민한다. 총장을 교수 중에서 뽑느냐, 외부 인사를 영입하느냐도 중요하다. 공직 경험자를 임명하는 경우도 많다. 홍콩폴리테크닉대는 비즈니스맨 출신을 총장으로 영입하면서 대학을 혁신한 좋은 사례다. 덴마크 노르웨이 오스트리아는 총장을 선거제에서 임명제로 바꾸었다. 남미도 총장 직선제를 하다 개혁에 많은 지장을 받았다.

▽김진표=국립대는 정부가 직접 설립한 경우다. 대학을 정부로부터 독립시키려고 하는데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 이사회가 없어 총장을 선거로 뽑는 상황이다.

○ 대학 정체성 유지하며 전략적 제휴만 하기도

▽이종재=중국은 별 준비 없이 5개의 작은 대학을 하나로 합치는 방식의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잘 돌아가는 곳도 있지만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대학도 있다. 일본도 국립대 법인화를 통해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옐런드=일본의 대학 개혁 효과를 말하는 것은 아직 성급하다. 일본 대학의 자율성은 재정 책임까지 포함한다. 교육개혁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능률성과 효과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다. 유럽의 대학은 독립법인으로 스스로를 공공 교육기관으로 생각하지 않고 비영리 사립으로 인식한다. 정부는 훌륭한 재정 지원자이지 소유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미=대학 통폐합이나 다운사이징에는 장단점이 혼재돼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스트리아, 중국, 헝가리 등은 대학끼리 통폐합했다. 지난해 베이징(北京)대가 베이징 의대를 합병한 것은 실패 사례이지만 푸단(復旦)대와 저장(浙江)대의 합병은 성공이라고 본다. 정부 주도가 꼭 성공하는 건 아니다. 지역 연계성, 대학간 보완성, 시너지 효과 등 3가지 기준을 따져봐야 한다. 이질적 대학을 합병하는 게 쉽지는 않다.

▽옐런드=영국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대학 스스로 통폐합을 추진한 사례가 많다. 재정이 빈약한 두 대학이 합쳐 탄탄한 대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맨체스터대와 과학기술원(IST)이 합쳐 재학생이 6만5000명이나 되는 대학으로 커졌고 뉴질랜드 출신 인물을 부총장으로 영입했다. 대학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전략적 제휴에 따라 협력만 하는 대학도 있다.

▽이종재=정부도 대학과 함께 협력하며 일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일해 본 적이 없는 것은 문제다. 아직도 상호 신뢰가 부족하다.

▽김진표=통폐합이나 국립대 수를 줄이는 게 교육부의 목표인 것처럼 오해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대학구조개혁은 참여정부 인수위원회 때부터 논의됐다. 대학구조개혁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 한국교육 국제평가서 상위권… 본받으려는 나라 많아

▽이종재=한국은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연구(PISA)’나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비교(TIMSS)’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보였지만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옐런드=한국 교육이 내부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평가는 단순 암기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유용한 시험이다. 다만 과도한 사교육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세금을 통해 교육비를 내지만 한국은 부모들이 직접 사교육비를 감당하는 차이점이 있다.

▽살미=한국이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 원인이 공교육 덕분이냐, 사교육 덕분이냐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인은 자신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다. 한국을 본받으려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 한국의 대학개혁 노력은 고무적이다. 어떻게 실행하느냐가 문제다. 정부가 강압적으로 주도하면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 대학은 학생이 줄어 걱정한다는데 그럴 필요 없다. 성인교육이나 외국인 학생 유치로 활로를 찾으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정리=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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