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체포동의안 부결 낯 뜨겁다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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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어제 여야 의원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몇 달 동안 처리를 미루다가 여론의 압력 끝에 동의안을 상정하더니 혐의의 경중과 관계없이 곧바로 전원 부결이라니 어떤 명분을 붙여도 ‘동료 의원 감싸기’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사람은 한나라당 박재욱 박주천 박명환 최돈웅, 민주당 이훈평 박주선,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이다. 대부분 현대·SK비자금사건, 굿모닝게이트, 나라종금사건 등 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표결 전 신상발언에서 한결같이 ‘억울하다’고 했는데 그런 말은 영장심사과정에서 해야 옳다. 줄곧 ‘방탄국회’ 뒤에 숨어 지내다가 이제 체포동의안까지 부결됐으니 마치 면죄부나 받은 듯 다시 국민의 대표 노릇을 할 것인가.

모든 국민이 따라야 할 법 절차를 국회의원만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그처럼 범법혐의를 집단적으로 비호해서야 법치가 확립될 수 없다. 정치개혁 등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정쟁(政爭)을 일삼으면서도 ‘동료 지키기’에는 왜 그처럼 손발이 잘 맞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집권세력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반성하고 속죄해도 부족한 정치권이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 처리에 반대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을 그처럼 소리 높여 규탄하면서 정작 동료 의원들의 비리 의혹에 눈감는 것은 몰염치한 자기모순이다.

국회 회기 중 의원을 체포 구금할 경우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한 헌법 규정은 의정활동을 부당한 정치적 탄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취지다. 그런데도 취지가 변질돼 의원에 대한 정당한 사법처리를 저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온 게 사실이다. 국회가 검찰 수사를 방해하는 헌법 왜곡이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 된다. 국회는 범법자의 도피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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