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땅다람쥐가 동면의 비밀 밝힌다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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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동물들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드는 시절. 먹을거리가 없고 날씨도 추워 땅밑에서 웅크리고 한겨울을 나는 게 생존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다. 그런데 최근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물을 잘 연구하면 장거리 우주여행이 가능해지고 골다공증 뇌중풍 등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끌고 있다.

동면 동물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종류의 하나는 북극땅다람쥐. 캐나다와 시베리아 툰드라 전역에 서식하는 이 동물은 8월이면 벌써 겨울에 접어들어 최저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을 피해 땅을 파고 겨울잠에 들 채비를 한다. 워낙 얼어붙은 땅이라 기껏해야 60cm 깊이가 한계. 이곳에서 8개월간 기나긴 잠에 빠져든다.

놀라운 사실은 체온이 영하 3도까지 떨어져도 혈액이 얼어붙지 않는다는 점. 일반적인 동면동물의 경우 체온이 1, 2도까지 낮아진다고 보고돼 있다. 더 떨어졌다가는 혈액이 냉각되고 심장 박동이 느려져 ‘동사’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 그런데 북극땅다람쥐는 체온이 영하 수준인데도 혈액이 얼지 않는 것이다.

북극땅다람쥐가 겨울잠을 잘 때 혈액이 얼어붙지 않는 이유를 찾으면 냉동캡슐 안에서 장거리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 사진은 영화 ‘에일리언’의 한 장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10일 와이어드뉴스 온라인판은 다년간 북극땅다람쥐의 생리를 연구해 온 알래스카페어뱅크스대 브리언 반스 박사팀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반스 박사는 그동안 100여마리의 다람쥐 배에 컴퓨터칩을 이식해 겨울잠을 자는 동안의 체온 변화를 조사했다.

연구 초기에 그는 북극땅다람쥐가 보통의 동면동물처럼 몸 속에 정교한 ‘부동액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개구리는 동면 전 먹이를 섭취해 혈액 속에 대량의 포도당을 비축함으로써 혈액의 어는점을 낮춘다. 마치 겨울철 자동차에 부동액을 넣어 냉각수가 얼지 않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북극땅다람쥐는 상황이 달랐다. 반스 박사가 동면 중인 다람쥐의 혈액을 채취해 실험실에서 온도를 낮추자 불과 영하 0.6도에서 얼어버린 것. 분명 초강력 부동액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스 박사는 다람쥐가 체온을 매우 천천히 낮춤으로써 어는점 이하의 온도에서도 얼지 않는 ‘과냉각’ 상태에 도달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원인을 뇌에서 분비되는 특정 화학물질에서 찾고 있다.

그는 “북극땅다람쥐가 동면에 들어갈 때 뇌 분비물질을 찾아내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면 인간의 장거리 우주여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래에 수십년이 걸리는 우주여행이 실현되려면 인간은 영화 ‘에이리언 3’에서처럼 냉동캡슐 내에서 긴 수면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체온이 2도만 낮아져도 장기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반스 박사는 “북극땅다람쥐가 분비하는 화학물질을 인간의 뇌에 주입하면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명대 생물학과 이성호 교수는 “현재 불치병 치료를 위해 수십년간 환자를 냉동 보관하려는 시도가 있다”며 “이번 연구는 의료용 냉동인간을 실현시키는 일에도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북극땅다람쥐는 뇌중풍 환자에게도 훌륭한 치료책을 제시할지 모른다. 인간의 경우 뇌혈관이 파괴되거나 굳어져 뇌중풍에 걸리면 혈액 공급이 중단돼 산소가 부족해져서 즉시 뇌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하지만 북극땅다람쥐는 다르다. 한 방울씩의 혈액이 서서히 뇌에 공급돼 산소가 미미하게 전달되는데도 머리가 말짱하다. 많은 과학자들이 뇌중풍환자의 치료책을 찾기 위해 북극땅다람쥐에 관심을 쏟는 이유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장기동면 흑곰은 골다공증 왜 안 걸릴까▼

미국의 연구진은 흑곰이 6개월간 잠잠히 누워 겨울잠을 자는데도 뼈가 여전히 튼튼하다는 데 주목했다. 사람 같으면 칼슘이 빠져나가 뼈가 과자처럼 부스러지기 쉬운 환경이다.

1일 미국의 ‘실험생물학회지’에는 흑곰에게 골다공증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연구논문이 게재됐다. 미시간기술대 연구진은 1년간 5마리의 흑곰에서 혈액 시료를 채취해 뼈의 대사성분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흑곰도 다른 동물처럼 겨울잠을 자는 동안 뼈 손실이 증가한 것은 사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뼈가 계속 생성됐으며, 겨울잠에서 깰 즈음에는 그 속도가 크게 증가했다. 동면기간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 흑곰이 어떻게 뼈의 칼슘성분을 충당했을까.

연구진은 흑곰이 몸 속에 있던 칼슘을 ‘재활용’한다는 점을 밝혔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유독 칼슘만은 대소변을 통해 배출되지 않고 몸에 흡수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흑곰과 사람의 뼈 대사과정에 관여하는 호르몬 구조를 비교함으로써 인간의 골다공증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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