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어린이-청소년 교양서적 출판 '올벼' 양원태 대표

  • 입력 2003년 12월 21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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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려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던 양원태 올벼 출판사 대표는 이제 “어린 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인문 사회 교양도서를 꾸준히 만들어 우리 사회의 희망을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김미옥기자
젊은 시절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려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던 양원태 올벼 출판사 대표는 이제 “어린 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인문 사회 교양도서를 꾸준히 만들어 우리 사회의 희망을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김미옥기자
“20대 때는 나,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아직도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여전히 사람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양원태(梁沅太·38)씨는 ‘초보 출판인’이다. 5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문 사회 계열 교양서적을 출판하는 ㈜올벼를 설립했다. 올벼는 ‘철이 이르게 익는 벼’라는 뜻의 순우리말. 그는 “올벼로 송편을 빚어 여러 사람과 나누듯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갖도록 안내하는 책을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22일 올벼의 첫 작품인 ‘또 하나의 교과서1-거꾸로 경제학자들의 바로 경제학’을 냈다. 양씨(서울대 경영학과 84학번)와 학교 동문인 최강문(정치학과 84학번), 강동호씨(종교학과 85학번)가 공동집필한 이 책은 11명의 경제학자에 대한 이야기.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부터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 등이 등장하는 ‘경제 위인전’이다. 경제학자들의 삶과 사상에 안데르센 동화 등을 가미해 경제 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예를 들어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는 늘어난다’는 마셜의 법칙을 비판한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이론을 서울 강남의 백화점에서 저렴한 옷보다 500만원짜리 명품 모피 코트가 더 잘 팔리는 현상으로 풍자한다.

“학교는 주어진 과목만 배울 것을 강요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들은 컴퓨터 오락이 현재의 즐거움이고, 생산적인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죠. 어린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양씨는 경제 외에도 철학, 역사학, 문학, 예술 관련 도서를 지속적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또 하나의 교과서’ 2탄으로는 현직 국회의원이 집필하되 그 내용은 국회와 선거, 정치의 메커니즘을 어린이의 눈높이로 다루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양씨는 ‘운동권’ 출신이다. 질곡의 80년대 시위현장을 누비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적도 있다.

특히 87년 12월 대통령선거 당시를 잊지 못한다. 서울 구로구청 개표 부정 의혹과 관련, 공정선거감시단으로 농성을 벌이던 중 진압하던 경찰에게 맞아 5층에서 떨어지면서 등뼈가 부러졌다. 8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이 됐다. 91년 대학졸업 후엔 ‘장애인 인권사업단’에서 홍보 기획업무를 맡으며 장애인 운동에 나섰다.

“사실 그전엔 장애인이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장애인이 돼 보니 열악한 편의시설, 교통문제 등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왜 장애인들이 집안에 처박혀 있을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됐죠.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찾는 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출판인으로 또 장애인 권리찾기 운동가로 활약 중인 양씨는 이른바 386세대.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대기업 등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구속된 386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온 올곧은 자존심을 팔아먹어선 안 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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