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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자유'를 탄다…'모터사이클 마니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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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자유'를 탄다…'모터사이클 마니아들'

입력 2003-07-31 16:45수정 2009-10-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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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열린 하계투어 중 대관령 휴게소에 집결한 MCK회원들.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 사는 곳, 하는 일이 제각각이지만 모터사이클를 주제로 한 얘기만 시작되면 오랜 친구처럼 흉허물 없어진다. 강릉=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토요일인 지난달 26일 오후. 강원도 강릉 경포대 인근의 한 펜션에서 모터사이클 동호회인 BMW 모토라드클럽코리아(MCK)의 여름철 정기투어가 열렸다.

모터사이클 애호가들은 BMW, 할리데이비슨 등 주로 보유기종을 중심으로 동호인 모임을 만들어 전국 곳곳을 함께 여행한다.

MCK가 결성된 것은 99년 3월. 현재 80여명인 정회원들이 연 3회 전국 단위 투어를 하지만 지역별로, 또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결성한 소단위 팀별로는 매주말 투어가 있다. 회원 가입의 유일하고 명시적인 조건은 BMW 모터사이클의 오너여야 한다는 것. 이들이 보유한 모터사이클은 대부분 배기량 260cc 이상의 이른바 대(大)배기량 모터사이클. BMW 모터사이클의 가격대는 950만원부터지만 동호인들이 보유한 기종은 3000만∼4000만원 대다.

모터사이클을 타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가슴속 열정도 나이도, 성도, 직업도 헬맷을 쓰고 달릴 때는 보이지 않는다.

●나를 찾기 위해 달린다

“바이크(동호인들은 모터사이클을 이렇게 부른다)를 타면 나이가 거꾸로 가.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감각이 아주 예민해지지. 내 스스로 무서움을 만드는 거야. 내게 안정은 스트레스일 뿐이에요.”

㈜삼포식품과 ㈜태원식품의 오너인 안충웅 회장(63)은 지난해 전문경영인들에게 양 회사 사장직을 맡긴 후 모터사이클을 ‘다시’ 타기 시작했다. 28년간 핸들을 잡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다시는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모터사이클이 없었다면 그의 회사도 없었다.

안 회장의 첫 모터사이클은 배기량 90cc의 일제 혼다. 71년 창업한 뒤 그 혼다에 ‘삼포만두’를 싣고 분식집으로, 현장근무하는 경찰기동대로 배달을 다녔다. 사업번창과 더불어 모터사이클도 125cc, 250cc로 업그레이드 되다가 어느 날인가 자가용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기사가 모는 자가용 뒷좌석에 앉아서도 안 회장은 언제나 모터사이클이 차 옆에 서면 “따라가 봐, 더 빨리 가 봐, 옆에 붙어봐”하고 레이스라도 벌이듯 흥분했다.

“왜 타냐고요? 나 자신을 찾으려고…. 달릴 때는 길하고 나밖에 없어.”

90cc 혼다를 몰던 시절의 어느 여름날 일을 안 회장은 결코 잊지 못한다. 100kg은 족히 되는 배달물건을 실은 오토바이의 타이어가 펑크 났다. 자동차처럼 스페어 타이어가 없는 모터사이클. 동대문구 청량리부터 이문동까지 쇳덩어리 같은 모터사이클을 끌고 가야 했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그냥 여기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 회장은 끝내 핸들을 놓지 않았고 인사불성에 가까운 상태로 목적지에 도착해 쓰러졌다.

“나한테 모터사이클은 그냥 기계가 아닙니다. 지금도 면봉에 라이터기름을 묻혀서 구석구석 내가 직접 닦아요. 3시간쯤 걸리죠.”

안 회장이 주말마다 함께 투어링을 하는 팀은 노장그룹이다. 박태준 회장(57·일간 환경일보사), 강영구씨(49), 최연소자인 올해 마흔의 김쌍철씨(정육업)다. 저녁식사 후 여흥 시간에 동호회원들 앞에 마이크를 들고 선 안 회장은 이런 다짐으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코너링을 하며 오토바이를 많이 눕혀서) 바이크 아래쪽에 흠집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절대 못 고치게 합니다. 내 자랑이고 자존심이니까요. 앞으로도 가능한 한 많이 눕히고 쓰러지지 않겠습니다.”

강혜은씨(35·경기 여주군 가남면)는 네 살, 15개월의 두 아이를 데리고 투어에 따라왔다. 남편 최연식씨(36)는 모터사이클을 몰고, 강씨는 아이들과 차로 달렸다.

“큰아이가 갓난쟁이였을 때는 기저귀를 싸들고 2박3일씩 함께 투어에 나섰어요. 아이는 제가 넉넉한 가죽옷을 입고 그 안에 폭 싸안아 바람을 막았죠.”

최씨와 강씨 부부는 여주에서 5만평 규모의 벼농사를 짓는다. 농한기인 겨울에 시간이 많다보니 영하 20도에도 모터사이클을 끌고 나서는 ‘무모한 짓’을 했다.

99년 결혼할 때까지 남편 최씨는 강씨에게 모터사이클을 탄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이내 좋은 동반자가 됐다. 처음 뒷자리에 탄 뒤 오래되지 않아 “아, 좀 땡겨(동호인들 사이에 ‘속도를 낸다’는 뜻). 그렇게 탈 거면 타질 말아요”라고 남편에게 성화를 부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시어른들 모시고 사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럽죠. 한번씩 투어에 나서면 밖에 나오는 재미에, 달리는 재미에…. 뒷자리에 타서도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요. 둘째가 더 자라면 저도 다시 투어에 나서야죠.”

MCK의 2대 회장인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35)은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생활반경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 모임의 창단 멤버인 정 부사장은 98년 모터사이클링에 입문했다.

“차만 타고 다닐 때는 ‘경기 양평’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아이고 그 먼 데를…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모터사이클로는 하루에 1000km도 달려 봤어요. 오전 7시에 서울을 출발해 전남 해남 땅끝까지 갔다가 오후 11시쯤 돌아오면 주행거리가 그쯤 되죠.”

정 부사장이 꼽는 최고의 모터사이클 투어코스는 강원의 태백. “서울에서 출발해 태백으로 가는 길도 좋고 단양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도 절경”이라는 것.

“모터사이클이 교통법규상 고속도로로 못 들어가니까 국도 인근의 여러 가지 풍경을 발견하는 덤이 있어요. 가다가 아름다운 곳에서는 멈춰 서기도 하고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았다면 저로서는 모르고 살았을 장소들,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입니다.”

●몸도 모터사이클의 일부다

하계투어에 참가한 40여명의 동호인들이 귀가 전 경포대부터 대관령 옛길에 있는 대관령 휴게소까지의 25km를 기념주행하기로 한 27일 아침. 부슬비가 내렸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것 보다는 구름 낀 날이 투어하기에 낫지만 비 오는 노면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박동훈 현 MCK 회장(39· 피오피핸즈 사장)은 능숙한 자세로 모터사이클에 올라 길잡이에 나섰다. 시골에서 중학교 다닐 때부터 탄 경력을 합치면 모터사이클링 경력 20년이 넘는다.

“몸을 이완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동그란 바퀴 두개로 달리는 바이크는 제가 가던 방향대로 그대로 가려 하고, 넘어지지 않으려는 성질이 있어요. 특히 코너를 돌거나 할 때 바이크가 가는 방향을 거슬러서 힘을 주면 사고가 나기 십상입니다.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늘 강조되는 운행 원칙이 ‘팔에서 힘을 빼라, 바이크가 가려는 대로 몸의 중심을 이동하라, 그러면서도 마치 스키를 타듯이 길을 계속 그리면서 가라’는 것입니다.”

모터사이클 동호인들이 그룹투어를 즐길 때는 2차선 이상이 되면 좌우로 나뉘어 일명 철새법, 즉 지그재그 운행을 한다.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는 사람에게는 떼로 몰려 부리는 ‘세 (勢)과시’로 보이지만 운전자들로서는 시야를 확보하며 안전하게 운행하는 기초 수칙이다.

법률적으로 ‘2륜자동차’로 불리는 모터사이클 대수(배기량 50cc 이상)는 2003년 현재 170만여대다.

강릉=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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