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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시대]<8>저축에서 투자로 패러다임 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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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금리시대]<8>저축에서 투자로 패러다임 시프트

입력 2003-07-30 17:15수정 2009-10-1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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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독일에서는 “옛 동독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사설 펀드매니저가 1년 동안 75%의 투자수익률을 거뒀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투자자금을 공개모집하겠다”고 밝혔다. 다음날 하루 만에 우리 돈으로 따져 700억원이 몰려들었다.

스위스의 관광 도시 루체른의 베르 한스(27·회사원)는 지난해 3월 한국 코스닥 주식에 2000만원가량 투자했다가 넉 달 만에 절반을 날렸다. 아버지가 한국 기업에 컨설팅을 하는 인연으로 한국에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는 그는 “한국 주식시장은 한국 사람들처럼 열정적이지만 한국인들처럼 친절하진 않더라”며 씁쓰레 웃었다. 3년 뒤 결혼할 예정인 한스씨는 “은행 저축만으로는 10년 안에 내 집 마련이 어려울 것 같아 주식투자에 나섰다”고 밝혔다.》

유럽인들의 재테크 취향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지난해부터 독일에서 사설 투자자문사가 앞 다퉈 생겨나고 있다. 국가가 노후를 책임져주는 유럽식 사회보장제도가 흔들리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복지사회가 흔들린다=10년 전만 해도 중부유럽에서는 별도의 노후 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직장에서 은퇴하면 국가연금이나 기업연금에서 은퇴 전 소득의 50∼70%를 탈 수 있었다. 생활수준을 조금 낮추고 은행 저축을 헐어 쓰면 품위 있게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가계 지출은 단순했다. 연금보험료는 다달이 원천공제된다. 남은 월급을 10년간 부지런히 저축하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생활비를 아껴 쓰면 1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하고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가연금이 머지않아 파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말부터 보험료를 더 걷고 연금은 덜 주는 방향의 연금개혁이 유럽 전역에서 본격화됐다.

이제 유럽인은 줄어든 연금을 채울 나름대로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처지가 됐다. ‘연금이 깨져 아예 연금 구경을 못 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저축에서 투자’로 재테크 패러다임의 전환을 재촉하고 있다.

▽부동산으로 개인연금으로=스위스 수도 베른의 레토 캠프(39·공인회계사)는 지난해 큰 맘 먹고 은행돈을 빌려 집을 장만했다. “다달이 은행 빚을 갚느라 살림이 빠듯하지만 한시름 던 기분”이라고 한다. 그는 은퇴하면 연금으로 생활비의 60%를 막고, 나머지 40%는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생기는 돈으로 충당할 작정이다.

최근 유럽 전역에 걸쳐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부동산 불패(不敗) 신화’를 믿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은 영국 21.8%, 스페인 13%, 프랑스와 스웨덴 6.9% 등으로 전 세계 평균 4.2%를 웃돌았다.

경기침체 영향으로 4.4% 떨어진 독일만이 예외다. 저금리에 만족하지 못해 은행을 떠나 증시로 몰렸던 돈이 2000년 초 주가 폭락을 계기로 부동산으로 몰려간 것이 배경이다.

부동산에 투자할 만한 돈이 없는 사람은 개인연금에 많이 가입하는 추세다. 독일 뉘른베르크의 도로시아 크라머(32·여) 목사도 여기에 해당한다. “앞으로 연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그는 두 달 전부터 1800유로(약 240여만원)의 월급에서 400유로씩을 떼어 개인연금에 붓고 있다”고 말했다.

▽위험 기피인가, 현실 부정인가=하지만 스위스의 코스닥 투자자는 극히 드문 사례다.

드레스드너방크의 레네테 핀케 이코노미스트는 “연금개혁은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으나 유럽인의 행동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독일 가계 금융자산에서 은행 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들어 계속 줄어들다 2001년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두드러진 변화는 주식투자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개인보험이 조금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처럼 유럽인들은 노후대비를 위한 새로운 투자전략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아직은 머뭇거리고 있다.

프랑스 농협CA투신운용의 필립 바체비치 사장은 “내 주변 사람들은 연금 위기를 걱정하면서도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아무리 충고를 해줘도 다들 귀를 막아버린다”고 전했다.

‘경제 회생’을 위해 ‘국민의 노후보장’을 희생한 복지국가에 대한 배신감도 적지 않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의 올리비에 오귀스트 기자는 “금융기관들이 개인연금처럼 시대 흐름에 맞는 상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객의 불행(연금개혁)을 장사에 활용해봤자 실익은 적고 욕만 실컷 얻어먹을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있다는 설명이다.

프랑크푸르트·베른=이철용기자 lcy@donga.com

파리=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유럽의 글로벌 투자환경 ▼

‘옆 나라 영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얼마일까. 이탈리아 패션 산업의 성장세는? 네덜란드의 치즈 생산량은?’

프랑스의 펀드매니저들은 매일 유럽 내 다른 나라의 경제 흐름을 살피고 있다. 각 나라의 정치 상황이나 사회적 이슈, 홍수 등의 자연재해까지 모두가 관심의 대상이다.

유럽연합(EU)으로 묶여있는 유럽 국가에서는 다른 나라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시차도 거의 없고 화폐가 유로로 통일돼 있어 환(換)리스크도 없다. 때문에 유럽인들은 다른 국가의 금융상품을 마치 자국의 지방 상품처럼 사들일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은 물론 한국 등 아시아의 여러 신흥국가의 금융상품에도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하고 있다. 펀드의 종류도 수천가지. BNP파리바의 대표적인 펀드인 ‘파비스트(Parvest)’만 해도 ‘파비스트 이탈리아’처럼 특정 국가의 주식만 모아놓은 펀드는 물론 ‘파비스트 동유럽’ ‘파비스트 유럽 미들 캡’ ‘파비스트 유로 주식’ 등 나라별, 섹터별로 엮어놓은 70여종의 하위 펀드를 거느리고 있다.

UCITS(Undertakings for the Collective Investment of Transferable Securities)라는 펀드도 활성화돼 있다. 이 펀드는 투자회사나 펀드매니저가 자국에서 영업 등록을 하면 다른 EU 가입국의 별도 허가 없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다. 나라마다 다른 규제와 여러 등록 절차 등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 수백종류의 펀드 매매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이런 자유로운 매매 분위기는 EU에 가입돼 있지 않은 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웨덴은 국민연금 기금도 주저 없이 지구 반대편 나라의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AP3 펀드의 경우 스웨덴 주식형 펀드에는 기금의 16%만 들어가 있다. 나머지는 유럽 주식형에 17%, 글로벌 주식형에 21% 투자해 해외 상품의 비중이 더 높다.

국민연금 가운데 스웨덴 국민이 직접 펀드를 선택해 운용하는 ‘수익연금(Premium Pension)’의 포트폴리오 역시 자국의 주식에 12%, 해외 주식에 24% 비율로 집계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펀드가 투자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넓혀주고 있지만 유럽인들도 최근 3년동안 별다른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2000년 이후 정보기술(IT) 거품의 붕괴 등으로 인한 주식시장의 폭락 현상은 유럽 대륙에도 휘몰아쳤기 때문.

그러나 유럽인들은 최소 장기적인 관점에서 증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주식투자의 상당 부분은 생명보험이나 개인연금 등 10년 이상의 장기 상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자연스럽게 형성된 투자 문화다.

파리=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예금의존 높은 한국은 ▼

한국과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에서 예금의 비중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높다.

예금 금리가 높고 은행이 문을 닫으면 국가가 예금을 전부 돌려주던 시절에 은행 저축은 수익률 높은 훌륭한 투자수단이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저금리가 추세로 굳어진 요즘에 이 같은 소극적 자산배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금 이외에 주식 채권 등 위험자산에도 투자를 해서 기대수익을 높이는 게 좋다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하려면 그저 열심히 벌고 저축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요령 있게 돈을 불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내자산 이외에 해외자산에까지 투자 범위를 넓히는 ‘국제적인 분산투자’가 투자 실패의 위험을 줄이면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방법으로 추천되고 있다. 그렇게 해야 금리 환율 주가의 쉴 새 없는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

프라이빗 뱅킹(PB) 전문가들은 투자 자금이 많지 않더라도 자산별 및 국가별 분산투자 원칙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씨티은행 일본지점은 재산을 불려나가기 위한 분산투자의 황금비율로 △장기적으로 운용하는 국제적인 분산투자 30∼50% △자본이득을 노린 단기적인 매매 20∼40% △생활자금 및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투자 자산 10∼30%를 추천한다.

국내의 주식 채권 및 부동산에 투자자금을 몰아넣은 뒤 나중에 여유자금이 생기면 해외펀드에 들라는 말이 아니다. 투자 기간을 기준으로 자금을 적당히 배분한 뒤 장기 투자 재원은 아예 처음부터 여러 나라 자산에 나눠서 투자하라는 것이다. 최근 해외투자의 기회가 많아진 한국 투자자들도 귀담아들을 만한 권고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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