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불황 터널 벗어나나]다우-닛케이 상승 날개짓

  • 입력 2003년 7월 9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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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불황의 끝이 보이는가. 실물경기를 6개월 앞서간다는 증권시장이 뉴욕과 도쿄를 중심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이라크전쟁,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 9·11테러 이후 세계경제를 짓눌러온 악재가 거의 소멸하면서 비관적인 전망은 경기상승에 대한 기대심리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러나 소비 투자 고용 등 실물지표들이 아직 얼어붙어 있고 주가 상승 역시 전 세계적인 탈(脫)채권 도미노에 힘입은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부쩍 움직임이 활발해진 세계경제를 긴급 진단해본다. 》

▼美…‘실물 지표’ 임시직 두달째 늘어 청신호▼


“우리는 지금 전환점을 보고 있으며 확실히 바닥에선 벗어났다.”

“이젠 자신감이 생겼다.”

지난주 발표된 미국의 6월 실업률은 6.4%로 9년 만의 최고치였지만 경제 분석가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이렇게 환영했다. 임시직 고용이 두 달째 늘어나 220만명이 됐다는 통계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임시직 고용자 숫자는 경기의 바로미터로 쓰인다. 경기가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면 정규직원을 더 쓰기 전에 임시직을 일단 고용하고 경기가 위축될 때면 임시직부터 해고하기 때문.

그리고 “실업률이 높아진 것도 그동안 구직을 포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경기가 회복된다는 소식에 구직자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며 하반기에 더 높아지겠지만 문제가 안 된다”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하반기 중 경기회복에 대한 의심은 거의 사라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 때 실업률은 4.1%였다. 높은 실업률이 정치쟁점이 되면 그의 재선가도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이미 민주당에서는 “부시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계속 하는 바람에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레인 차오 노동장관은 “이달 말부터 미국의 일하는 가정들이 감세정책의 효과를 느끼게 되면 이것이 활력으로 작용해 더 많은 고용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미국기업경제학회(NABE)의 조사에선 기업들이 2년 만에 장비 투자를 늘리겠다는 답변이 나와 기업의 심리도 크게 개선돼 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인 12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컴퓨터 등 장비 투자를 늘리겠다는 비율이 44%로 줄이겠다는 비율 17%에 비해 훨씬 높았다. 그동안 기업들이 경기 동향을 관망하면서 신규채용이나 투자를 꺼려왔던 데 비하면 큰 변화다. 이미 5월 중 공장가동률이 49.8%로 50% 수준에 육박했으며 재고가 급감하고 신규수주가 빠르게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가장 빠른 변화의 현장은 역시 뉴욕증시다. 올 3월 11일을 바닥으로 4개월 만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현재 36%의 높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는 25%,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22%의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세계적으로 3000억달러의 투자자금을 굴리는 크레디스위스애셋 매니지먼트사의 스탠리 나비 전무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기회가 왔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아직도 싼 주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 달 동안 나스닥 기업 가운데 올해 실적 전망치를 상향조정한 기업은 13%로 하향조정한 기업 7%에 비해 훨씬 많았다. 기업 실적이 당초 예상보다 좋아질 것이란 의미다.

슈와르츠인베스트먼트 카운슬의 조지슈와르츠 대표는 “증시 주변에 주식쪽을 바라보는 부동자금 4조달러가 대기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가 주식시장으로 되돌아오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오래 추진해온 저금리 및 감세정책의 효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日…전자업체 인원감축-원가절감 흑자반전▼


‘파나소닉’과 ‘내셔널’ 브랜드로 유명한 마쓰시타전기는 지난해 3월 결산에서 4000억엔(약 4조원)이 넘는 경상손실을 냈다. 가전제품의 판매 부진으로 적자가 확실시되자 경영진은 미수채권 등 잠재부실을 모두 결산에 반영해 손실 폭을 오히려 키웠다.

그러나 인원감축과 원가절감 등을 통해 올 3월 결산에서는 1200여억엔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히타치 도시바 NEC 샤프 등 전기전자업종의 9개 대기업도 모두 흑자로 돌아섰고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자동차 ‘빅 3’는 사상 최고이익을 냈다.

전문가들은 금융부실과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의 기반을 이루는 제조업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개별 기업의 실적은 개선됐지만 닛케이평균주가는 이라크전쟁과 사스의 영향으로 약세를 면치 못했다. 급기야 4월 말엔 7,607엔까지 떨어져 거품 붕괴 후 20여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주가가 오름세로 돌아선 것은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된 5월 초부터. 이후 가파른 상승행진을 계속한 닛케이주가는 두 달 동안 30%나 올랐고, 8일엔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장중 한 때 10,000엔선을 돌파했다.

증시전광판에 네 자리 숫자가 찍히자 도쿄증권거래소에서는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TV는 ‘일본 경제는 과연 살아나는가’를 주제로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일본의 주가상승을 촉발한 직접적 요인은 물론 미국 뉴욕증시의 호조. 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투자자들이 2년 전 닛산자동차의 부활에서 확인한 가능성을 다른 기업에서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수익성과 주주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일본 기업의 경영이 바뀌는 것을 보고 ‘닛산신화의 재현’에 대한 기대감에서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일본 경제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징후는 적어도 통계상으로는 뚜렷이 감지된다.

경제통산성이 자본금 1억엔 이상의 기업 2200여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기업의 설비투자규모는 지난해보다 6.7% 증가해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일본은행 조사에서는 대기업들의 설비투자가 11.5%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5월 중 기계수주 실적이 6.5% 늘어나는 등 기업의 투자심리 개선이 실제 행동으로 연결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실적이 대폭 개선돼 자금사정에 여유가 생기면서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투자쪽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유통업종을 중심으로 서서히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 한 백화점 사장은 “(주가가 오른) 6월 하순부터 판매실적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 경제상황에 변화가 생기는 느낌”이라며 주가상승 특수를 점쳤다.

그러나 가격할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가전 등의 소비는 제자리이고 백화점 매출은 5월까지 14개월 연속 전년실적을 밑도는 실정.

도쿄 증권가에서는 현재 일본 기업의 주가가 실체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된 상태라는 점을 들어 닛케이주가가 12,000∼14,000엔 선까지는 무난하게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10년 디플레의 골이 워낙 깊은 탓에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일반 가계의 체감경기 회복과 불황 종식을 점치기는 무리라는 신중론이 여전히 우세하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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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弱달러 지키기’ 强攻▼

채권투자에 집중했던 전 세계 투자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면서 환율시장도 춤을 추고 있다. 5월 말 유로당 1.1909달러까지 치솟았던 유로화가 최근 숨을 고르는 사이 달러화 가치가 강세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국제 환율전쟁에서 달러화 진영은 더욱 공세로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덩달아 미 달러화 가치에 고정시킨 중국 위안화는 물론 대만 달러, 한국 원화도 도마에 오를 조짐이다.

기록적인 저금리와 재정적자 시대에 환율조정은 각국 정부의 마지막 경기부양 카드. 그러나 유럽은 15개국 경제연합인 탓에 통일적인 환율정책을 펴기 어렵다. 김동완 국제금융센터 상황정보팀장은 “유럽중앙은행의 최고 목표는 인플레 방지에 있다”며 “지난달 금리를 0.5%포인트 낮춘 것이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1.0% 금리시대를 연 미국도 불확실한 감세정책의 ‘약발’에만 의지할 수 없는 처지. 따라서 시장 직접개입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달러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미 시사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8일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의심된다”며 딴죽을 걸었다. 그동안 일본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시중은행에 미리 정해놓은 엔-달러 환율 수준에서 달러화를 사도록 요청해 거래가 성사되면 엔화로 갚는 방식으로 엔고를 막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방식이 정부 ‘장부’에 기록이 남거나 외환보유액 등에 변화를 주게 돼 외국 정부의 원성을 살 우려가 커지자 최근엔 달러화 매입주문을 내되 실제 거래는 체결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환했다는 것. 정부의 요청을 받은 특정은행의 달러화 매입 움직임을 일부러 은행권 전체에 흘려 달러화 매입을 부추긴 뒤 목표환율에 이르면 주문을 취소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내 82개 산업협회가 결성한 ‘건전한 달러를 위한 연합’은 최근 일본은 물론 중국 대만 한국까지 싸잡아 환율조작국 리스트에 올렸다. 달러당 8.3위안으로 가치를 고정시켜둔 중국의 위안화 저평가정책이 직접적인 공격대상이지만 원화도 사정권에 들어와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이 한국으로 몰려들면서 원화 상승압력이 높아졌다”며 “한국정부의 시장개입 가능성을 미국이 주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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