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신뢰경영]<13·끝>선진기업 윤리규범 한국서 꽃핀다

  • 입력 2003년 6월 29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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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윤리경영을 도입한 신세계는 2001년과 올해 2차례에 걸쳐 동아일보의 윤리경영, 신뢰경영 시리즈 취재작업에 참여하면서 본보 기자의 해외 취재에 신세계 직원들도 동행했다. 이들이 수집한 선진기업의 윤리경영 사례는 그대로 신세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3M 직원은 괴롭힘이 없는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 회사는 직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고 안전한 직장 환경을 제공한다.”(3M의 윤리규범)

2001년 본보 기자와 함께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3M 본사를 방문한 신세계 김정식 부장은 3M의 정교한 윤리규범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월 경기 용인 신세계유통연수원에서 열린 ‘2003년 신세계 임원 워크숍’에 참석한 신세계 임원들이 윤리경영 실천을 다짐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기업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폭언이나 노려보기 등 직원끼리 괴롭힘에 대한 세세한 정의와 처벌 기준을 마련하고 있었기 때문. 또 직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책임과 가이드라인도 담겨 있었다.

김 부장은 귀국한 뒤 3M의 윤리규범을 번역해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 내용은 다음해(2002년) 신세계 윤리규정에 반영됐다. 신세계는 올 5월 매장에서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하는 안전진단에 들어갔다. 최근 한 부하 직원에게 폭언을 한 상사를 경고 조치하기도 했다.

세계의 윤리경영이 한국기업에 스며들고 있다. 윤리경영 도입 초기 부정부패를 없애는 네거티브적인 접근방법에서 벗어나 해외 선진기업의 실천사례를 벤치마킹해 직원과 협력업체의 공존을 모색하는 경영원리로 삼고 있는 것.

▽선진기업을 벤치마킹하라=“세계 표준화된 기업 윤리는 사업 파트너를 평가하는 가장 손쉬운 기준이 될 것이다.”

신세계 사보 올 4월호에는 ‘윤리경영의 국제표준’ 논의를 소개하는 특집이 실렸다. 미국 보스턴 벤트리대 기업윤리센터를 신세계 사보팀이 본보와 동행 취재한 것. 이어 5월호에는 역시 본보와 함께 취재한 일본 도요타와 혼다의 협력회사 존중 경영 사례를 소개했다.

신세계는 또 사내 취재팀을 꾸며 외국 기업의 윤리경영 실천 사례와 사회공헌 활동에 관한 사내 방송용 기획 시리즈물을 자체 제작하고 있다. 선진 외국기업의 윤리경영 실천 사례를 소개해 직원들의 윤리경영 의식을 북돋기 위한 것.

인터넷이나 개별 방문을 통해 해외기업의 윤리경영 실천 사례도 자체 수집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를 왜 묻느냐’거나 ‘한국기업에 세세한 기업 경영원리를 공개할 수 없다’는 외국기업의 홀대를 받아가며 얻은 사례는 신세계 윤리경영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협력업체와 공존=신세계는 일본 자동차업체 도요타와 혼다, 미국 생활용품업체 존슨앤존슨의 협력업체 존중경영 사례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6000여개 협력업체를 가진 신세계로서는 윤리경영 실천은 물론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협력업체와 공존의 파트너십 구축이 필수적이기 때문.

이달 초 300여개 협력업체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을 초대해 윤리경영 세미나를 열고 신세계 구학서 사장이 직접 강사로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매년 협력업체 만족도를 조사하고 있다. 도입 초기에는 신세계의 윤리경영을 반신반의하는 협력업체들이 많아 응답률이 5%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20%대로 올라섰다.

기업윤리실천사무국 명노현 과장은 “부정부패를 들추는 게 윤리경영의 전부는 아니다”며 “직원은 물론 협력업체와 상호공존을 위해 해외기업의 윤리경영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시스템 구축하라=월마트 등 세계적인 유통업체의 사례를 토대로 불투명한 거래를 없애는 시스템 구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신세계 이마트 7층 협력업체 상담실. 오후 6시 이후에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7층 계단을 걸어서 내려와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오후 6시가 되면 가동을 멈춰버린다. 협력업체 관계자와 바이어의 납품 상담이 저녁 접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 오전 상담을 원칙으로 한다.

신세계의 본사 협력업체 상담실에는 금품 수수나 향응을 요구하는 직원을 고발해줄 것을 알리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월마트 협력업체 상담실에 걸려 있는 ‘선물과 향응 금지’ 안내문을 본뜬 것이다.

일본 유통업체 이토요카도가 운영하는 핫라인 제도를 최근 도입했다. 원산지를 속이거나 모조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는 물론 협력업체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내부 직원 모두가 고발 대상이다. 최근 이 핫라인을 통해 한 협력업체 사장이 신세계 직원의 부당한 요구를 고발했다. 또 명절 등에 신세계 직원에게 선물을 제공한 협력업체 3곳 가운데 1곳과 거래를 중단하고 2곳의 거래를 제한했다. 제도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협력업체 상담실도 올해 열었다. 인터넷으로 협력업체가 상품 납품을 제안하거나 상담하고 상담 내용이 회사 내부에 공개된다.

▽직원과 고객 사이로=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 이마트 매장에서는 여름철에는 단무지 달걀 등이 들어간 김밥을 팔지 않는다. 여름철에 상하기 쉬워 식중독 사고의 원인이 되기 때문. ‘매출이 줄더라도 고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제품은 판매하지 않겠다’는 스위스 식품업체 네슬레의 윤리경영을 본받은 것이다.

신세계는 또 미국 제지회사 인터내셔널페이퍼 등처럼 윤리경영을 조직 내부에 뿌리내리기 위한 작업을 개시했다. 올해 윤리경영 마스코트를 만들어 자판기 컵은 물론 직원 수첩, 결재판 등에 사용하고 있다.

윤리경영 정착을 위한 평가 프로그램도 강화하고 있다. 다국적 생활용품업체 존슨앤존슨의 윤리경영 평가 제도를 벤치마킹해 올 하반기부터 도입할 계획. 올해부터 임원 평가에서 윤리경영 비중을 10%에서 20%로 높였다. 또 사회봉사 등 윤리경영을 실천한 모범 사원에게 ‘윤리경영 대상’을 주고 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윤리경영' 전도사 신세계 구학서 사장 ▼

“해외 선진기업의 윤리경영 현장을 돌아보며 윤리경영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윤리경영을 할수록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미 풍토가 바뀌고 있다. 윤리적인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윤리경영을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

1999년 윤리경영을 선포하고 ‘윤리경영 전도사’로 불리는 신세계 구학서 사장은 “윤리경영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윤리경영을 확산시키고 기업 문화로 뿌리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리경영에 대한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윤리경영은 구호가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조직 내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 2001년과 올해, 본보의 윤리경영, 신뢰경영 시리즈에 대해 공감하고 취재에 직원을 동행시킨 것은 선진 기업의 윤리경영 실천 사례를 접목시키고 윤리경영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윤리경영을 잘 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약간 엉뚱한 주장이 있다”며 “윤리경영을 하면 기업에 이익이 되는데 왜 세제혜택을 줘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구 사장은 이어 “기업은 윤리를 본령으로 삼는 교회나 사찰이 아니다”며 “윤리경영은 ‘기업의 이윤추구’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외환위기가 터져 신입사원을 1년 늦게 발령을 냈다. 기업 경영을 제대로 못하면 아들 또래의 젊은이의 일자리까지 빼앗는다. 경영인으로서는 경영을 잘못해 기업을 도산시키는 것이 가장 비윤리적인 일이다. 윤리경영도 기업의 올바른 이윤추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구 사장은 한국기업의 윤리경영 노력을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했다. 윤리경영에 동참하려는 직원과 기업이 늘어나 이제 절반쯤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소수가 다수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

“미국 엔론, 월드컴과 국내 대기업의 회계부정이 이어지면서 윤리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윤리경영은 한때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유행이 아니다.”

이 결과 신세계는 올해 협력업체 핫라인을 개설하고 온라인 상담실 등을 열었다. 거래비용을 증가시키는 부패를 차단하기 위해 해외 선진기업의 윤리경영 시스템을 도입한 것. 윤리경영 확산을 위해 협력업체 세미나도 열었다.

“60년 이상 윤리경영을 실천한 외국기업을 한숨에 따라잡을 수는 없다. 제도는 단기간에 들여올 수 있지만 기업 문화로 뿌리를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형식에 치우친 윤리경영을 경계했다. 윤리경영을 잘하는 기업을 점수 매기고 줄 세우려는 논의는 형식에 치우치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설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만 수취 거절로 돌아온 선물이 3000여건이나 될 정도로 한국 사회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성주인터내셔널 김성주 사장이 쓴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는 책을 읽고 있다는 그는 “윤리경영을 하는 기업이 다수가 되면 투명거래와 경영을 주장해도 ‘왕따’ 취급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특별취재팀>

▽팀장=허승호 경제부 차장

▽팀원=김용기 신연수 이강운 공종식 정미경 박중현 김두영

홍석민 기자(이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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