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54…아메 아메 후레 후레(30)

  • 입력 2003년 6월 29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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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이나 같은 공장에서 일하니까 친언니라고 생각하고 무슨 일이든지 의논해. 나도 안성에 두고 온 내 동생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안성 사투리라 군데군데 모를 말이 있었지만 뜻은 알 수 있었다. 안성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고, 밀양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조선말로 계속 얘기하면 남자가 따돌림을 당하는 것처럼 느낄까봐 마음에 걸렸다. 그녀도 소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입을 다물고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비?”

“그래. 비하고 같이 여행을 하는 것도 괜찮지” 남자는 창문 양 끝에 있는 열쇠를 잡고 팔에 힘을 주면서 창을 닫았다.

“비?” 소녀는 유리창에 이마를 갖다댔다.

비였다. 하늘은 흙탕물처럼 누릿누릿하고, 바깥의 빛은 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회색 선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칙 칙 칙 칙, 증기기관차가 숨을 헉헉거리며 젖은 선로 위를 달린다. 우편차, 삼등차, 삼등차, 삼등침대차, 식당차, 이등차, 이등침대차, 일등침대 전망차, 여덟량을 끌고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철교를 건너는 소리마저 비에 푹 젖은 듯 들린다. 기차 안으로 눈길을 돌린 소녀는 여기저기 좌석을 메우고 있던 국민복 차림의 남자들이 사라지고 대신 댕기머리에 치마저고리 모습의 여자들이 앉아 있는 것을 그제야 안다. 남자들은 경성에서 내리고, 저 여자들이 탄 모양이지. 하늘색 치마, 다홍색 치마, 연두색 치마…알록달록한 우산을 펴서 바닥에 줄 늘어놓은 것 같다. 이런 꼴 하고 있는 거 나뿐이잖아, 소녀는 복숭아 물이 묻어 있는 치마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역시 벽장에서 빨간 대추색 치마 꺼내 입을 걸 그랬나봐…아아…핏치 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

“어?”

“아메 아메 후레 후레예요”

“어어, 아메 아메 후레 후레 카아상가 그 노래”

“지금 몇 시예요?”

“5시20분. 이제 한 시간이면 신막이다”

“벌써 저녁때네요”

“이제 곧 밤이지. 해가 꽤나 짧아졌구나”

“창문, 열어도 돼요?”

“그러렴”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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