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86>邯 鄲 之 夢(한단지몽)

  • 입력 2003년 6월 24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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邯 鄲 之 夢(한단지몽)

夢-꿈 몽 及-미칠 급 極-다할 극

陷-빠질 함 弼-도울 필 逆-거스를 역

당나라 玄宗(현종) 때의 이야기다. 呂翁(여옹)이라는 도사가 邯鄲(현 河北省)의 허름한 여관에 투숙해 있었다. 그 때 盧生(노생)이라는 젊은이가 들어오더니 신세타령을 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졸음이 와서 呂翁의 베개를 배고 잠이 들었다. 그 베개는 도자기로 만든 것이었는데 양쪽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자는 동안 구멍이 자꾸만 커져 盧生은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別天地(별천지)였다. 고래등같은 집이 있었는데 盧生은 그 집에서 명문 崔氏(최씨) 가문의 閨秀(규수)와 결혼을 하고 進士(진사)에 及第(급제)하여 관리가 되었으며 후에는 京兆尹(경조윤·서울시장)까지 지냈다.

그러나 物極則反(물극즉반·만물은 極에 달하면 쇠퇴하게 됨)이라고 했던가.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는 간신의 謀陷(모함)으로 3년간 귀양살이를 하고 다시 서울로 불려와 이번에는 宰相(재상·국무총리)에 올라 10년이 넘도록 天子를 輔弼(보필)하여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物極則反의 攝理(섭리)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逆賊(역적)으로 몰려 죽게 된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고향에는 얼마 되지는 않지만 田畓(전답)이 있소. 내가 농사를 짓고 있었던들 이런 受侮(수모)를 겪지는 않았을 텐데. 누더기 걸치고 邯鄲의 길거리를 거닐 때가 좋았소.’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그는 또 다시 귀양을 가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 왕은 후회한 나머지 盧生을 다시 불러들여 이번에는 中書令(중서령·국회의장)에 임명하였다. 하지만 盧生은 高齡(고령)을 이기지 못해 끝내 죽고 말았다.

자신이 죽는 순간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꿈이었다. 盧生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邯鄲의 초라한 여관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여관의 주인은 그가 잠들기 전 조(粟)를 삶고 있었는데 그 조가 아직 다 익지도 않았다. 盧生은 단지 짧디 짧은 꿈을 꾸었을 뿐이었다. 허탈하기 그지 없었다. 아! 한바탕의 짧은 꿈, 그러면서도 갖은 迂餘曲折(우여곡절)을 다 겪지 않았던가? 그 때마다 一喜一悲(일희일비)했던 자신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가. 한낫 부질없는 꿈을 가지고.

부질없는 인생을 뜻하는 고사성어는 이 밖에도 또 있다. 一場春夢(일장춘몽)이니 南柯一夢(남가일몽) 등. 재미있는 것은 중국 사람들이 인생을 ‘꿈’에 비유했다는 사실이다. 짧고 허망하지만 그런대로 재미도 있다는 뜻은 아닐까.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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