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 300홈런의 제물 불명예가 아니다

  • 입력 2003년 6월 16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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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 기록경기인 프로야구에도 대기록의 환호와 영광 뒤에는 넋을 잃은 채 망연자실해 있는 희생양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기록의 제물이라고 해서 언제나 어둠 속에 묻혀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기억한다. 프로야구 원년인 82년의 시작과 끝을 화려하게 수놓은 2개의 극적인 만루홈런을.

역사적인 개막전은 MBC 이종도가, 한국시리즈 최종 6차전은 OB 김유동이 날렸다. 공교롭게도 상대 투수는 둘 다 삼성 이선희.

이선희가 누구인가.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당대 최고의 왼손투수. 결국 그는 그 사건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프로에선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은퇴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종도나 김유동보다는 이선희를 더욱 사랑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유순한 성격에 겸손했던 그는 이후 한 순간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고 지도자 변신 후 수많은 후배를 길러냈다. 또 지난해에는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보며 자신에서 비롯된 삼성의 21년 징크스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병현과 박찬호도 비슷한 경우다. 김병현은 2001년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4,5차전에서 잇달아 통한의 홈런을 맞았지만 미국 야구팬이면 누구나 기억하는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박찬호도 그해 배리 본즈의 71,72홈런 신기록의 제물이 됐지만 정면 승부를 펼쳐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대기록 탄생의 이면에는 떳떳치 못한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게 사실. 84년 져주기 경기 때 삼성은 부산 팬의 거센 야유에도 불구하고 이만수를 출전시키지 않았다. 게다가 롯데 홍문종을 9타석 연속 고의볼넷으로 걸렀다. 결국 이만수는 홍문종보다 1리가 높은 타율 0.340으로 국내 유일한 트리플 크라운에 올랐지만 최우수선수의 영광은 롯데 최동원에게 넘겨야 했다.

91년 빙그레 시절 송진우가 세계 최초의 다승 구원왕이 되고도 타이틀 만들어주기 시비에 휩싸여 최우수선수는 장종훈이 차지한 것도 같은 예.

이제 우리는 삼성 이승엽의 최연소, 최소경기 300홈런이란 슈퍼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상대 투수의 집중 견제는 있어도 이승엽의 기록 달성을 저지하기 위한 작위적인 행위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기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어느 투수가 300홈런의 제물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오히려 그것을 막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야 말로 불명예가 될 것이다.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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