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이사람/42년간 황모필 제작 이인훈씨

  • 입력 2003년 6월 15일 21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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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붓의 생명은 끝에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사용해도 끝이 둘로 갈라지지 않고 ‘하나’로 살아 있어야 해요. ”

한국 전통의 황모필(黃毛筆) 만들기 42년. 이인훈(李仁勳·58·)씨는 족제비 털(황모)을 사용한 ‘한국 전통붓’ 제작에 있어 국내 독보적인 존재다.

그가 부인과 함께 살고있는 대구 달서구 송현동의 조그마한 아파트(26평)가 전통붓의 산실이다. 거실에는 그에게서 붓을 구입해간 이름난 작가들이 보내준 감사의 글과 그림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그는 2평 가량의 작업실에서 정신이 맑아지는 새벽, 작업에 들어간다. 하루 만드는 붓은 평균 50여자루. 한자루의 붓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모두 150여회가량 손길이 간다는 그는 “젊을 때는 일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웃었다.

그는 족제비털과 노루털,그리고 청설모털 등 주로 세가지를 붓재료로 사용한다.

주문제작에만 응하는 그는 “서예가나 화가의 서법이나 화풍에 맞춰 만들어주기 때문에 내가 만드는 붓은 ‘한사람만을 위한 붓’”이라고 말했다.

서예가들과 필방주인들은 그의 붓에 대해 “족제비털로 만드는 황모필에 관한 한 전국에서 누구도 그를 따라 잡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작은 글씨에 적합한 세필 제작에 있어서는 국내1인자”라는 평가.

그가 만드는 붓은 삼우당(三友堂)필방이라는 상표를 달고 팔린다.

전통붓을 만드는 가업을 3대째 해 오고 있는 그의 집안이 붓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70여년전. 일제 때 경북 청송군에 살았던 그의 조부인 황달호(黃達浩·1952년 작고)씨가 3·1운동에 가담한 뒤 일경의 수배를 피해 서울의 한 사대부 집에 머물던 중 한 하인으로부터 붓만드는 법을 배운 것이 계기였다. 부친 상제(相帝·87년 작고)씨도 평생을 붓만들기에 받쳤다.

그는 “중국산 저가붓이 대량으로 수입돼 한국 전통붓의 위상이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면서 “한국전통붓 연구소를 만들고 대학교에 출강, 젊은 세대들에게 전통 붓을 만드는 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싶다”고 덧붙였다. 053-654-4003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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