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42…아메 아메 후레 후레(18)

  • 입력 2003년 6월 15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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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솔 살랑 살랑 솔솔 살랑 살랑, 미적지근한 강바람이 소녀의 뺨을 어루만지고 머리칼을 말아 올렸다. 바람에 묻어 있는 물기가 온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에 소녀는 푸르르 몸을 떨었다. 솔솔 살랑 살랑, 보름달은 천천히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달빛은 소리없이 어둠에 빨려 들어갔다. 저 모퉁이만 돌면 가로등도 없는데, 어쩌지, 켜졌다 꺼졌다 좀 으스스하네, 뛰자, 막 뛰어서 지나가자. 크고 작은 온갖 나방이 미친 듯이 가로등에 몸을 부닥치며 빛 속으로 하양 노랑 파랑 인분을 떨어뜨리고 있다. 동그란 가로등 빛 안으로 들어가자 소녀의 그림자가 마치 채찍처럼 점멸하는 빛의 리듬에 맞춰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너울거렸다. 아이 참, 고무신 바닥이 떨어졌네, 어떻게 하지,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소녀는 발을 질질 끌며 빛을 떠나 두꺼운 어둠을 응시했다. 뭘 그렇게 흠칫거리는 거야? 아까 본 그것 때문에? 그거 절대 아랑의 유령 아니야, 유령 같은 거 절대 없어! 만약 유령이 있다면 아버지가 나한테 안 나타날 리 없잖아. 그럼 뭐였지, 이 한기는? 온 몸에 소름이 좍 끼치네. 나 불안해서 그런가 봐, 혼자 일본에 뚝 떨어져서 잘 해낼 수 있을지, 아버지, 아버지, 절 지켜봐 주세요, 나, 보란 듯이 일해서 돈 많이 벌어가지고 돌아올 거예요, 아버지 무덤에 인사도 못 드리고 가는 거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우리 아버지….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쓰르르 쓰르르 쓰르라미가 울기 시작했다 쓰르라미 녀석 일찍도 깨어났다 안녕! 새 하루가 시작됐다 다른 어떤 계절보다 큐큐 파파 한 여름의 아침 길을 달리면 새 하루가 시작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큐큐 파파 주황색 커다란 능소화 꽃에 덮여 있는 대문 새빨간 고추가 산더미처럼 널려 있는 툇마루 바둑이 녀석 아침해가 막 솟았는데 벌써부터 장독대 뒤에 숨어 헉헉거리고 있다 이놈 정신차려! 큐큐 파파 초록 큐큐 파파 초록이다 옥수수도 밤송이도 대추도 큐큐 파파 나는 연푸른 대추색을 제일 좋아한다 어렸을 적 주머니에 가득 담아 돌아오면 아버지는 큐큐 파파 아이구 가시나 같은 짓 좀 그만 하고 다녀라 큐큐 파파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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