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분자 트랜지스터 실용화되면 펜티엄칩 1만분의 1로 작아져”

  • 입력 2003년 6월 15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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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하버드대 화학과 박홍근 교수.
美 하버드대 화학과 박홍근 교수.
“요즘 인텔의 펜티엄칩에는 트랜지스터가 1억개 들어 있습니다. 트랜지스터 하나의 크기는 100(나노미터·10억분의 1m) 정도지요. 제가 고안한 단(單)분자 트랜지스터는 크기가 1nm입니다. 이것이 실용화된다면 펜티엄칩을 1만분의 1 크기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극미의 나노 세계에 도전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젊은 한국 과학자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 화학과 박홍근 교수(36). 한국의 노벨상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는 그는 3일 호암재단이 주는 과학상을 받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박 교수는 3년 전 공 모양의 탄소 분자 하나로 세계 최초의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두 전극 사이에 분자 하나를 넣고 이를 조작하면 분자가 스위치 역할을 해 정보를 처리한다. 이때 전극 사이를 오가는 것은 오로지 전자 하나. 전자 하나로 정보를 저장한다고 해서 단전자 트랜지스터로도 불린다.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 트랜지스터가 과학잡지 ‘네이처’를 통해 공개되자 당시 ‘뉴욕타임스’도 이를 크게 보도했다. 이어 지난해 6월 그는 바나듐 분자로 정보를 더 입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획기적인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네이처’에 커버스토리로 소개됐다. 현재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만든 곳은 하버드대와 코넬대 두 곳 뿐. 그는 미국에서도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다.

“지금은 분자로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보여준 단계에 불과합니다. 인텔이 관심을 가져 자문을 하고 있지만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많이 집적해 실제 칩을 만들려면 앞으로 10∼15년은 지나야 할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손목시계가 슈퍼컴퓨터가 된다. 한번 충전하면 1년은 쓸 수 있는 컴퓨터도 나오게 된다. 요즘 트랜지스터 소자에서는 1억개의 전자가 이동하지만 단분자 트랜지스터에서는 전자 하나만 이동하므로 전력 소모가 극히 적다.

이 밖에 그는 DNA나 생화학무기를 검출할 수 있는 분자센서도 만들어 벤처기업에 기술을 이전했다. 요즘 DNA를 검색하려면 이를 증폭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이 센서를 이용하면 피 한 방울로 즉시 유전자를 검색할 수 있다.

서울대 화학과 재학시절 이미 외국 저널에 논문을 발표한 그는 대학을 수석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99년 하버드대 조교수가 된 그는 올해 1월 부교수로 승진했는데 학과에서는 벌써 그의 정교수 승진안이 통과돼 총장의 심사만 남겨놓고 있다.

박 교수는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는 20명에 불과하지만 과학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로 선택과 집중을 잘하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말한다.“저는 기초 과학자입니다. 내가 만든 트랜지스터나 센서가 언젠가 사람들의 생활을 바꿀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기업이 할 일입니다. 아직 모르는 미시세계의 분자나 전자가 가진 성질을 밝혀내는 게 평생 하고 싶은 일입니다”라고 밝혔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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