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프로젝트]<7>러시아 바이칼湖 살리기

  • 입력 2003년 6월 12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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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환경단체 회원.-이르쿠츠크=김기현특파원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환경단체 회원.-이르쿠츠크=김기현특파원
《‘세계의 청정(淸淨) 호수, 시베리아의 진주….’

지구상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호수 바이칼은 수많은 신비를 담고 있다. 바이칼 지역은 끝없이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구석기 문화 유적이 여기저기 남아있고 샤머니즘과 우리민족의 원류인 몽골계도 이곳에 처음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이칼은 90년대 초부터 불어닥친 개방의 가혹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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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에서 동쪽으로 70km 떨어진 리스트뱐캬 마을. 앙가라강이 바이칼과 만나는 지점에 있는 이곳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에게 바이칼 여정의 출발점이다. 산과 호수에 둘러싸여 있어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마을은 조그만 정교회 성당을 중심으로 시베리아식의 나지막한 목조가옥들이 흩어져 있다. 이곳에는 3년 전만 해도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라고는 옛 소련 시절에 지은 낡은 ‘바이칼 호텔’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마을에 들어서자 그동안 달라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방갈로 스타일의 미니호텔과 레스토랑 등이 세워졌거나 세워지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예전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바이칼 지역 구석구석까지 들어가기 시작했다. 호수 주변 마을을 오가는 바지선(船) 선착장에서 만난 현지 주민 빅토르 스테파노프(36)는 “최근에는 바이칼 지역 원주민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북쪽 올혼섬 일대까지도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국제사회는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바이칼 지키기’에 나섰다. 유네스코는 1997년 바이칼을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했고 러시아 중앙 정부는 1999년 ‘바이칼 특별법’을 제정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등도 바이칼 보존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세계은행(IBRD)은 최근 40년 동안 바이칼의 오염원으로 지적돼온 바이칼펄프제지콤비나트(BCBK)에 폐수처리 시설을 갖추기 위해 1단계 작업 비용 3300만달러 중 2240만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현재 이 사업을 맡을 업체 선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러시아 정부도 이와 별도로 일반폐수처리 시설을 갖추기 위해 700만달러를 추가로 투입키로 했다.

무엇보다도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와 ‘바이칼워치’ ‘바이칼웨이브’ 등 바이칼 관련 비정부기구(NGO)의 활동이 더 돋보이고 있다.

그린피스는 여름마다 바이칼 주변에서 ‘바이칼 캠프’를 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은 환경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주요 지역을 돌면서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실제로 바이칼 보호 운동을 체험한다.

그린피스 덕분에 바이칼 지역에는 이러한 ‘환경캠프’가 많아졌다. 류드밀라 자볼로트츠카야 이르쿠츠크 제16학교장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여름 캠프를 해마다 열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캠프는 바이칼과 환경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과 가까워지도록 하는 등 교육적 성격이 강하다.

한편 갈수록 늘어나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바이칼 보존과 관광 자원 개발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도 다양해지고 있다.

바이칼 인근 슬류뱐카 마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알렉산드르 토크마코프(51)는 ‘에코투어(ecotour)’의 보급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에코’는 경제(economy)가 아니라 생태학(ecology)의 준말이다. ‘환경친화적인 관광’을 확산시키자는 것.

여기에는 “현지 주민들과도 함께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었다. 예를 들면 고급호텔에서 먹고 자고 버스나 유람선으로 단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박과 하이킹을 하는 것. 자연과 현지인의 삶을 동시에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 토크마코프씨는 “‘자연친화적’인 것이 곧 ‘인간친화적’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에코투어에서는 캠핑 때도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낚시나 사냥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바이칼 지킴이’들이 내놓은 바이칼 보존을 위한 ‘해법’은 약간의 불편과 욕망을 참는 인내였다.

‘바이칼웨이브’의 대표 제니퍼 사툰은 “바이칼을 지키려는 풀뿌리 운동으로 급속한 오염과 훼손을 막는 데 성공했다”며 “그러나 과거와 같은 청정호수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정부와 국제사회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르쿠츠크=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오염 주범 '바이칼 펄프제지'▼

1961년 건설 이래 바이칼 호수의 환경을 위협하는 대표적 산업시설로 환경운동가들의 격렬한 항의를 불러일으킨 바이칼 펄프제지 콤비나트 전경.-바이칼스크=김기현특파원

이르쿠츠크에서 남쪽으로 300km 떨어진 바이칼스크. 인구 4만6000여명의 이 작은 도시에는 바이칼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오염원으로 알려진 ‘바이칼 펄프제지 콤비나트(BCBK)’가 있다. 기자는 현지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한국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지난달 21일 BCBK를 방문했다.

BCBK 홍보 담당자인 알비나 요르기나는 공장 현황을 설명한 뒤 “폐수를 줄이려는 꾸준한 노력으로 상황이 호전됐다”며 관련 자료를 주었다.

그러나 동행한 운동가들의 안내로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서 있는 공장 주변의 숲 속으로 몰래 들어가자 공장에서 나온 폐수와 폐기물이 수백m 길이의 관을 통해 바이칼 호수로 버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녹이 슬 정도로 낡은 관은 군데군데 새고 있었다.

호수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도 온갖 폐기물들이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주변 갈대숲과 회색빛 늪은 죽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악취가 느껴졌다. 근처 농가에는 공해에 대한 내성이 강한 딸기 말고는 다른 농사가 안된다고 주민들은 설명했다. 현지의 여성 환경운동가인 올가 가메로바는 “비정상적으로 큰 기형 버섯이 숲 속에서 발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BCBK를 폐쇄하거나 이전할 수 없는 데 문제가 있다. 지역 경제가 종업원 2000여명의 이 공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주민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BCBK는 환경과 경제 논리가 팽팽히 부닥치는 현장이었다.

바이칼스크=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영국인 사툰씨 "바이칼은 세계보물 환경보호에 국경없죠"▼

“바이칼은 러시아만의 소유가 아니라 세계가 아끼고 지켜야 할 보물입니다.”

이르쿠츠크 시내 레르몬토프 거리의 ‘바이칼웨이브’ 본부. 이 단체는 바이칼 환경 문제 연구에서부터 전 세계의 바이칼 관련 단체들의 현지 활동 지원까지 도맡고 있는 대표적인 바이칼 관련 비정부기구(NGO)다. 독일 녹색당 등 국제 사회의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13명의 상근자와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본부에서 공동대표인 영국인 제니퍼 사툰(57·여)을 만났다. 그는 시베리아와 바이칼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에 29년째 러시아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옛 소련 시절 이르쿠츠크 외국어대에 교환교수로 와 영어를 가르치며 바이칼과 인연을 맺은 후 아예 러시아 영주권을 받고 눌러앉았다는 것. 개방 후인 92년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칼 보호 운동에 뛰어들어 바이칼 지킴이들 사이에서 ‘대모’로 통한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환경 전문가들도 많았다. 미국 미시간주립대 대학원에서 환경학을 전공하는 제니퍼 스미스(25·여)와 니콜 롬(23·여)은 1년 예정으로 이르쿠츠크에 머물며 바이칼 지역 주민들의 환경 의식 조사를 진행하면서 바이칼웨이브를 돕고 있었다.

뉴욕 출신의 스미스씨는 어릴 때부터 외국을 동경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화봉사단(Peace Corps)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오지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옛 소련의 핵실험장이 있었던 카자흐스탄에서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환경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 버몬트주(州) 출신인 롬씨는 고등학교 때 시베리아 톰스크에 교환학생으로 3주간 다녀온 뒤 러시아에 반해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시베리아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사툰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고 환경 문제에 대한 정보도 적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환경 보호에는 국경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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