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39…아메 아메 후레 후레(15)

  • 입력 2003년 6월 11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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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기야 멀지만, 아침에 삼랑진역에서 보통열차를 타면, 10시 전에는 부산에 도착할 거고. 부산에서 사쓰마 마루를 타고 다음날 아침이면 시모노세키다.”

“시모노세키에서는요?”

“시모노세키에서는 보통열차를 타고, 그렇지, 한 세 시간이면 도착할 거다. 하카다는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야.”

에이코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와 다리 사이에 돋아 있는 잡초를 쥐어뜯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그 사람이 정해주는 상대와 선을 보게 될 테고, 선을 보고 나면 어지간한 일이 없는 이상, 여자인 내 쪽에서는 거절할 수 없다. 안돼! 절대 안돼! 나는 엄마하고 다르다! 어떻게 그런 남자가 하라는 대로 할 수 있나!

“…내일 몇 시인가요?” 에이코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꺼칠해졌다.

“일할 마음 있으면 삼랑진에 8시까지.” 남자는 소녀를 격려하듯 미소지었다.

“삼랑진역에 8시까지라면, 밀양역에서 7시반 보통열차를 타면 딱 되겠네요.”

“지각하면 절대 안돼. 건너가서도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하니까.” 미소의 꼬리가 새카만 수염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바느질이라면 매화반에서 내가 재봉 점수가 제일 높을 정도니까 자신 있다. 다른 여공들보다 꼼꼼하게 군복을 바느질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양복점 선희처럼 미싱하면 어떻게 하지, 나, 바느질은 빠르지만, 미싱은 한 번도 써본 적 없고, 잘 못할 것 같은데. 미싱 써 본 적 없다고 하면 채용하지 않으려나? 그냥 말 않고 가만히 있을까, 아니, 아니지, 거짓말하고 건너 가봐야, 해보라는데 못 하면, 왜 거짓말 했느냐면서 되돌려 보낼 수도 있으니까, 솔직하게 물어보자, 물어볼 수밖에 없어, 에이코, 물어봐.

“…저…군복, 미싱으로 만드나요?” 햇볕에 그을어 거뭇거뭇한 에이코의 얼굴이 저녁 어둠 속에서 점점 창백해졌다.

“뭐? 미싱?”

“나, 바느질밖에 못하거든요. 바느질은 아주 잘하는데….”

“아아 괜찮아, 다들 나뉘어서 일하니까. 천을 재단하는 사람도 있고, 미싱질하는 사람도 있고, 단추나 안감 다는 사람도 있고, 걱정 안 해도 괜찮아. 너는 일본말도 잘 하고 솜씨도 좋다고 하니까, 일 금방 배울 수 있을 거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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