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서 149㎞… ‘이어도 과학기지’를 가다

  • 입력 2003년 6월 10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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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서남방 149km의 동중국해에 위치한 해양과학기지를 헬기에서 바라본 모습. 수심 40m의 이어도 수중 암초 위에 높이 76m의 철구조물로 건설돼 11일 완공된다. -이어도=신동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마라도 서남방 149km의 동중국해에 위치한 해양과학기지를 헬기에서 바라본 모습. 수심 40m의 이어도 수중 암초 위에 높이 76m의 철구조물로 건설돼 11일 완공된다. -이어도=신동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전설의 섬 이어도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2일 제주공항의 아침은 쾌청했으나 200km떨어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짙은 안개로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초조하게 기다리기를 몇 시간. 따가운 초여름 햇살이 오후 늦게 안개를 걷어내자 마침내 러시아제 헬기는 태평양으로 향했다.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전설의 섬에 남편을 영영 보내고 억세게 살아가는 제주 해녀의 민요 ‘이어도’가 넘실대는 태평양 위에서 귓전을 때린다. 제주를 떠난 지 꼭 1시간. 헬기는 동중국해 한복판의 종합해양과학기지에 사뿐히 내렸다. 수백년 동안 상상의 섬이었던 이어도에 헬기가 착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도는 섬이 아니다. 평균 수심은 50m, 남북과 동서 길이가 1800m, 1400m인 수중 암초다. 기지에서 700m 떨어진 암초의 정상도 해수면 4.6m 아래에 잠겨 있어 파도가 심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고려 때부터 전설로 전해오는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이 암초에 부딪쳐 위치가 확인되면서 배의 이름을 따 소코트라 암초로 명명됐다.

그러나 더 이상 암초가 아니다. 과학기지 건설 책임자인 한국해양연구원 심재설 박사의 끈질긴 요청에 따라 국립지리원은 지도에 이곳을 ‘이어도’로 표기했다. 엄밀히 말해 이제 400평짜리 ‘인공섬 이어도’인 것이다.

주변은 돌돔, 조피볼락, 붉바리 등 고급 어종이 사는 황금어장이다. 또 해상교통의 요충지여서 1987년 이래 해운항만청은 이곳에 6번이나 떠 있는 등대를 설치했으나 매번 파도에 휩쓸려 유실됐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이 없다. 이번에는 21m의 파고와 초속 49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게 튼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1일 이 인공섬이 준공되기까지는 8년의 세월이 걸렸다. 계획과 설계는 해양연구원이 맡았고 해양수산부가 건설비 212억원을 지원했다. 해양구조물 제작과 시공은 현대중공업이 했다.

심 박사는 “암초에 깊이 60m의 기초 파일을 8개 박고 수심 40m의 바다에 높이 76m, 무게 3400t짜리 구조물을 해상크레인으로 설치하는 어려운 작업을 하면서 우리도 이제 해양선진국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기지는 해류 풍향 풍속 수심 강우량 수질 염도 등을 측정하는 44종 108개의 최첨단 관측장비와 감시카메라를 갖추고 있다. 8명이 2주일 동안 외부의 지원 없이 숙식할 수 있다. 인터넷과 e메일은 물론 스카이라이프로 위성방송도 즐길 수 있다. 비상시에 대비해 발전기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기는 풍력발전기와 태양전지로 충당된다.

해양연구원은 평상시에는 기지를 무인 운영하고 가끔 헬기를 타고 가 시설을 점검한다.

경기 안산시에 있는 연구원 본부는 기지의 주요 장비를 무궁화위성 2호를 통해 원격조작할 수 있다. 관측기록과 영상은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구소와 기상청에 전송된다.

해양기지 건설의 효과는 막대하다. 우선 기상예보 해양예보 어장예보가 정확해진다. 기지 건설의 제안자인 해양연구원 이동영 박사는 “작년의 루사를 비롯해 한반도를 통과하는 태풍의 40%가 이곳을 지나 10시간쯤 후에 남해안에 상륙한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고 태풍의 진로 예측도 정확해진다. 전국의 시청자들은 태평양 한복판의 폐쇄회로 카메라를 통해 북상하는 태풍의 위력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기지는 매년 근처를 지나는 25만척의 선박과 어선에 위치를 알려주고 비상시 피난처 역할도 한다. 기지 건설 며칠 만에 이곳은 수많은 새의 피난처가 됐다. 헬기를 조종한 제주 해양경찰 신항섭 특수구조단장은 이날 사람 대신 길 잃은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를 구조해 제주도에 돌아와 풀어주었다.

▼건설책임 심재설박사 “中 시비로 이어도공사 두차례 중단”▼

중국은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건설 과정에서 2000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공사 중단을 요구한 바 있다.

이어도는 한중일 3개국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분쟁 수역이어서 어느 한편이 인공구조물을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건설 책임자인 해양연구원 심재설 박사(토목공학·사진)는 “EEZ가 중첩되는 수역에 이어도가 위치하지만 중국 일본보다 한국에 훨씬 가깝기 때문에 명백히 한국의 EEZ에 속한다”고 강조한다.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149km 거리. 중국과 일본의 무인도인 둥다오와 도리시마에서는 각각 247km와 276km 떨어져 100km 이상 우리 쪽에 가깝다.

또 한중 중간선을 기준으로 할 때도 이어도는 우리측 수역 깊숙이 위치하므로 유엔 해양법협약에 따라 EEZ 경계를 획정할 경우 한국의 EEZ와 대륙붕에 속하게 된다는 것.

심 박사는 “EEZ 내에서는 연안국이 석유자원 개발이나 이어도 과학기지처럼 인공구조물을 설치하고 과학적 조사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심 박사는 2006년에는 서해, 2010년에는 동해에도 해양과학기지를 세운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어도=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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