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담 허물기’ 무너진 시민의식…벤치 차지하고 대낮 음주

  • 입력 2003년 6월 1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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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11시반 서울 서초구 서초동 S중학교 운동장. 지난해 학교 담을 허물고 학교를 개방한 이 학교에 젊은 남자 2명이 소형 승용차를 몰고 들어와 운전 연습에 골몰하고 있었다. 운전연습을 하는 데서 불과 30여m 떨어진 곳에서는 10여명의 학생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서 농구시합을 하고 있었다. 운전이 서툰 소형차 운전자가 급출발과 급제동을 하면서 ‘끼익’하는 브레이크 밟는 소리를 낼 때마다 학생들은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비슷한 시간, 2001년 학교 담을 허문 서울 강동구 성내동 S초등학교 운동장. 한 가족이 나와 줄넘기를 하고 있는 운동장 반대편 한 구석에 마련된 벤치에서는 20대 청년 3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동안 술을 마시고 간 사람들이 많았는지 벤치 주변에는 담배꽁초와 컵라면 용기 등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 학교 역시 밤을 틈타 몰래 들어와 운전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지 운동장 전체에 타이어 자국이 나 있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아침마다 술병과 담배꽁초 등 각종 쓰레기를 치우느라 고생하는 아이들 얼굴 보기가 민망할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교육청과 함께 ‘학교 공원화’를 위해 벌이고 있는 ‘학교담 허물기(담장개방녹화)’ 사업이 낮은 시민의식 때문에 정착 과정에서 이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이 사업은 녹음이 우거진 푸른 교정을 만들어 학생들의 정서순화에 기여하고 방과 후에는 학교를 지역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시작됐다. 서울시는 지난해까지 250억원을 들여 159개 초중고교를 지원한 데 이어 올해엔 81개 학교에 1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이 사업은 그러나 서울 시내 초중고교 10곳을 조사한 결과 개방된 학교가 일부 시민들의 쓰레기 투기와 운전연습, 청소년들의 비행 장소로 이용되면서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1년 담장을 허문 서울 서초구 서초동 S고등학교의 경우 최근 나무가 우거진 학교 서남쪽에 50여m에 이르는 연두색 철망담을 다시 세웠다. 시민과 학생들이 길도 나 있지 않은 이쪽으로 학교를 드나들어 나무가 많이 훼손됐기 때문.

이 학교 관계자는 “이 쪽에 쓰레기장도 있어 시민들이 가전제품을 비롯한 대형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고 나무숲에서 불량배들이 본드를 흡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교 측은 길 건너편 파출소에 지속적인 교내순찰을 요청해 놓은 상태.

서울 금천구 독산동 N중학교도 지난해 담을 허문 이후 학교 관리비가 많이 나와 교직원들의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다.

지난달에는 밤새 100만원이 넘는 학교 대형 유리창을 누군가 깨뜨린 뒤 달아났다. 얕은 담을 따라 심은 사철나무들이 담을 넘어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부러져 올해 들어 나무를 다시 심기도 했다.

이 학교 한 교사는 “교내에 휴대용 가스레인지까지 들고 와 음식을 해먹고는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까지 있어 담을 다시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달 시의회 임시회의 때 가로등 추가 설치와 시설물 보호를 위한 경찰서와의 협조 방안이 거론됐다”며 “좋은 뜻으로 시작된 사업이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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