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스탠필드/눈에서 멀어도 友情 그대로

  • 입력 2003년 6월 6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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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연세대 국제대학원 과정을 마친 뒤 한동안 친구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대학 다닐 때 그토록 다정하게 지냈던 많은 한국인 친구들과의 연락이 갑자기 끊어지는,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계속 연락을 취했지만 답신은 기대만큼 자주 오지 않았다. 차츰 연락이 뜸해지더니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됐다. 나는 우정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한국 친구들은 평소 ‘미국인들이 처음에는 간도 빼줄 정도로 절친하게 대하지만 결국은 피상적인 관계로 끝나더라’는 경험담을 얘기하며 ‘평생 우정’을 중시하는 한국적 친구관계가 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그랬던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연락을 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아니면, 한국의 우정관이 미국식으로 바뀐 것일까.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먼 곳으로 떠나면서 느꼈던 고통이 떠올랐다. 친구들은 직업을 찾아 덴버, 샌디에이고 등지로 이사를 갔다. 만나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니, 여간해서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접촉 빈도와 우정은 비례한다. 자주, 긴밀하게 연락하지 않으면 그 친구를 잃어버릴 위험이 큰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 친구들은 졸업 뒤에도 대부분 같은 서울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연락이 끊어졌다는 점이 나를 더 상심케 했다. 나는 미국의 어머니에게 이 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한국 출신인 내 어머니는 30여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수백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지금까지도 이들과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매우 사교적인 분이다.

이런 어머니가 들려준 말은 의외였다. “자주 만난다고 해서 깊은 말을 하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몇 년 만에 한 번 만나도 여전히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정말 절친한 친구다”라고 얘기하시는 게 아닌가. 반면 미국인인 내 아버지는 사회적 관계 변화에 따라 우정도 바뀐다고 하셨다.

접촉 빈도와 우정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미국식 우정에 익숙한 나로서는 정말 당혹스러운 얘기였다. 미국처럼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품이 많이 든다. ‘우정 유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친한 친구라면 끊임없이 우정을 가꿔야 하고 자주 돌봐야 한다.

아직은 한국과 미국간의 우정의 차이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우정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우정 유지비’에서는 한국과 미국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만은 알 것 같다. 아마 한국인 동창들에게 미국 친구들과 같은 빈번한 연락과 관심을 기대한 게 실수였던 것 같다. ‘친구라면 계속 공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주 연락했던 것인데, 한국인 친구들은 연락이 없어도 우정에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달 나는 동창 모임에서 대학 시절 절친하게 지냈던 K를 1년5개월여 만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 같은 한국적 우정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력 ▼

29세.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에서 화학공학 전공. 1999년 한국에 와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한국학을 연구. 내년에 미국으로 돌아가 로스쿨에 들어갈 예정.

조셉 스탠필드 '동아시아 연구 저널' 편집자·영어강사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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