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산버스 알아서 타고 다녀라

  • 입력 2003년 6월 6일 14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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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송한주씨(71·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는 여의도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버스정류장을 찾지 못해 낭패를 봤다. 분명히 일산에서 여의도를 오가는 좌석버스가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을 지난다고 들었는데, 노구(老軀)를 이끌고 찾아다닌 그 일대 버스정류장 안내판에는 어디에도 '1008'번이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

대답을 꺼려하는 행인들의 손사래 세례를 받으며 30여분을 이러저리 다니다 어이없게도 번호 표시가 돼 있지 않는 한나라당 당사 앞 정류장에서 막 출발하는 해당 버스를 발견했다.

수많은 경기도 버스가 서울을 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내 버스정류장 안내판에 경기도 버스 번호를 체계적으로 안내해주는 행정시스템이 없어 시민들이 골탕을 먹고 있다.

◇ "알아서 타고 다녀라?"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후문 시내버스 정류장. 일산가는 921번 버스 노선이지만 역시 안내판에는 버스 번호가 없었다. 인근 슈퍼마켓 여주인에게 버스 통과 여부를 묻자 "번호는 없지만 정류장에 서 있으면 버스가 선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해당 버스 번호는 인근 홀트아동복지재단 정류장에는 표기돼 있는 등 뒤죽박죽인 상태.

1008번 버스 정류장인 한나라당 당사 앞 노점상 아저씨 역시 "아는 사람들은 잘 알고 타고 다닌다"며 "번호는 없지만 30분(버스 회사 측은 20분이라고 밝힘) 정도 기다리면 버스가 올 것"이라고 능슥하게 대답했다.

서울 서대문구청 교통관련 업무 관계자는 "이런 문제로 시민들의 항의 전화를 받곤 한다"며 "관내에 외부 버스가 많이 다니는 강남구(분당행)나 영등포구(안양 평촌행), 중랑구(구리행) 등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못지 않게 버스 업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경기도 버스를 운영하는 한 버스 회사 관계자는 "서울버스회사와 같은 번호를 가지고 공동노선을 운영하다가 서울회사가 노선을 포기하면 경기버스가 계속 운행됨에도 불구하고 정류장 안내판에서 그 번호가 사라지기 일쑤"라며 "답답한 마음에 직접 번호를 붙여보기도 하지만 규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떼이곤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 왜 일어나나

서울시내 정류장 안내판 관리는 서울버스운송조합이 대행사를 두고 관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합원이 아닌 경기도 버스 번호 안내 문제는 뒷전이다.

특정 번호가 안내판에 없는 이유를 서울버스운송조합에 문의하자 한 관계자는 "그 버스는 경기도 버스라 그렇다"며 "경기도 버스 회사에 문의하라"는 대답만 되풀이 했다.

서울시와 경기도 공무원들이 공익성 큰 버스 노선 안내를 조합 측에만 맡겨두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버스 회사간의 이해관계가 달린 노선변경에 대해서는 수시로 조정을 하면서도, 정작 시민의 편의성과 직결된 안내판 관리에는 어떤 행정력도 동원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대중교통과와 경기도 교통과에서는 모두 경기도 버스번호를 서울시내 정류장에 안내하는 절차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했다.

정류장 안내판 관리 실무를 맡고 있는 서울시 모 구청 관계자는 "시민들의 민원이 있을 때 가끔 경기도 버스번호도 안내가 될 수 있도록 시청과 버스운송조합 측에 공문을 보내지만 제도화된 행정체계가 없어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5월 현재 경기도 평촌이나 일산, 분당, 구리 등지에서 서울을 오가는 버스는 223개 노선에 2853대. 1대 당 평균 운행횟수는 하루 5~8회에 달한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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