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돌풍’ SK 와이번스 조범현 감독

  • 입력 2003년 6월 1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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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출범후 ‘구도(球都)’의 자존심이 꺾였던 인천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2000년 창단한 5번째 인천팀 SK 와이번스가 만년 하위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일약 선두에 뛰어오르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때문이다. 그 돌풍의 중심에 올해 처음 지휘봉을 잡은 조범현 감독(44)이 있다. 그는 선수 시절 철저하게 무명설움을 겪었지만 사령탑에 오르자 단숨에 최연소와 초보 딱지를 떼어내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또 인간 조범현의 매력은 무엇일까.》

○내가 무명이라고요?

조감독은 아직도 자신이 국내에 8명밖에 없는 프로야구 감독이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97년 잠시 삼성 감독대행을 했던 조창수씨가 있긴 하지만 프로야구에서 조씨 성을 가진 첫 정식 감독인 그는 배울 게 산더미 같은 ‘조(助)감독’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그러나 무명선수 출신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내젓는다. 두산의 전신인 OB 원년 멤버인 그는 첫 해인 82년 동기생 라이벌인 현 두산 코치 김경문을 제치고 주전 마스크를 썼다. 전반기에는 규정타석에 약간 모자랐지만 타격 10위권 안에 드는 3할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름에 심한 몸살을 앓고 난 뒤 김경문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후 92년 삼성에서 은퇴할 때까지 11년 동안 통산 타율 0.201에 1년에 1개꼴에 불과한 12홈런에 그쳤다. 그래도 강한 어깨와 노련한 투수리드로 수비형 포수로서의 능력은 최고였다. 다시 주전을 꿰찬 84년에는 OB 마운드를 역사상 최고의 팀 평균자책인 2.53으로 이끌었다. 85년에는 여태 깨지지 않고 있는 0.541의 도루 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박경완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재회

“처음 봤을 때는 선수도 아니었죠. 살이 너무 쪄 야구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런데 훈련을 시켜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어깨는 강철인데다 몸의 유연성도 뛰어났죠. 한 마디로 ‘흙 속의 진주’였어요. 서로 운이 좋았던 거죠.”

조감독이 지도자로 데뷔한 것은 93년. 신용균 삼성 투수코치가 쌍방울 감독 시절 그를 배터리코치로 발탁했다. 여기서 조감독은 박경완이라는 ‘운명’을 만나게 된다.

박경완은 조감독의 선수시절과 판박이였다. 전주고 동기생 스타인 투수 김원형의 공을 받아주기 위해 덤으로 입단한 그는 당시 1군과 2군을 오락가락하던 처지. 그러나 박경완은 조감독의 지도를 받자 단숨에 김원형을 능가하는 재목으로 성장했다. 야구계에 조감독의 이름이 퍼진 것은 이 때부터였다.

이후 둘은 올 초 다시 만났다. 쌍방울에서 현대로 이적했던 최고 포수 박경완이 자유계약선수(FA)가 되면서 조감독이 갓 부임한 SK에 합류한 것. 조감독은 올해 SK 돌풍의 일등공신으로 주저없이 박경완을 꼽았다.

○‘사부’ 김성근과의 고래심줄 인연

사실 조감독은 ‘김성근사단’의 정회원은 아니다. 김성근 전 LG감독은 5번이나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 딱 한번, 그것도 코치가 아닌 선수 시절에 조감독을 불렀다. 그런데도 조감독은 4번이나 김성근을 모시는 질긴 인연을 맺었다.

첫 만남은 대구 대건고 2학년 때 팀이 재정난으로 해체돼 충암고로 전학하면서 이뤄졌다. 당시 충암 감독이 바로 김성근. 이들 콤비는 봉황대기 우승을 이끌어냈고 조감독은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이후 조감독은 프로에 입단하면서 OB 투수코치였던 김성근과 재회했다. 91년에는 김성근이 삼성을 맡으면서 조감독을 교체 포수로 데려갔다. 쌍방울에는 조감독이 먼저 갔고 96년에 김성근이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조감독은 김성근을 하나둘 닮아가기 시작했다.

“기술적인 배움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었죠. 오로지 야구밖에 몰랐고 선수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사표를 던질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셨으니까요.”

자신의 가슴 속에도 ‘사표’를 준비해 놓고 있는 걸까. ‘제2의 김성근’으로 불리는 조감독은 이 말을 하면서 연신 왼쪽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년 꼴찌 SK의 환골탈태

“처음 선수들을 만나보니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었어요. 사실 SK엔 홈런타자는 물론 에이스와 전문 마무리, 발 빠른 톱타자 등 특출한 선수가 없잖아요. 선수들에게 살 길은 뭉치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어요. 그리고 팀 분위기를 해치는 돌출 행동만 아니라면 그라운드에서 어떤 실수를 해도 좋다고 했어요.”

조감독은 시범경기서부터 선수들에 전력을 다할 것을 주문했다. 결과는 1등. 선수들 사이에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싹텄다.

“어린이날이었어요. 대전에서 한화에 1-11로 지다 9회초 겨우 1점을 만회했죠. 그러자 선수들이 모두 달려나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난리를 치더라고요. 됐다 싶었죠. 그때부터 술술 풀렸어요.”

이런 일도 있었다. 용병 투수인 트래비스 스미스는 크게 앞선 경기에서 승리를 눈앞에 둔 5회 2사후에 교체해도 불만 하나 없었고 내야수 에디 디아즈는 며칠 전 부상으로 경기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돌렸다.

“시즌 초 몇 경기 잘했다고 강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SK가 진정한 강팀이 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지금 당장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좋지만 시즌이 끝난 뒤 마지막으로 웃는 팀이 돼야겠죠.”

초보 감독 조범현. 그의 마지막 말은 전혀 초보답지 않았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조범현 감독은 누구

△생년월일=60년 10월 1일생

△출신고=충암고-인하대

△가족관계=부인 성상희씨와 2녀

△선수경력=0B(82∼90년) 삼성(91∼92년) 615경기 출전 타율 0.201(1091타수 219안타) 12홈런 107타점

△지도자 경력=쌍방울 코치(93∼99년) 삼성 코치(00∼02년) 현 SK감독

△기타=77년 봉황대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 MVP, 85년 시즌최고 도루저지율(0.514)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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