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눈’ 안내견 ‘찬밥’취급…택시,식당 외면

  • 입력 2002년 4월 12일 18시 52분


4월 마지막 주 수요일인 24일은 ‘세계 안내견의 날’. 시각장애인의 ‘눈’ 역할을 해주는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날로 올해가 11회째다.

세계 안내견의 날을 앞두고 14일 서울 강남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는 삼성안내견학교 주최로 ‘제1회 세계 안내견의 날 기념 하프마라톤대회’가 열려 시각장애인들이 안내견과 함께 달릴 예정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만큼 고마운 존재는 없다. 하지만 안내견에 대한 사회의 인식 부족으로 안내견을 대동할 경우 곳곳에서 마찰을 빚기 일쑤다.

▼행인들 마구 쓰다듬어▼

11일 오전 11시반. 시각장애인 전영세(全永勢·23)씨는 네 살배기 안내견 ‘찬별이’를 데리고 서울 양천구 신월동 집을 나섰다. 찬별이는 캐다나산 레브레돌 리트리보. 삼성안내견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뒤 2000년 8월 전씨에게 분양됐다. 이날은 서대문구 신촌에서 점심 약속이 있고 오후에는 종로구 세종로 근처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찬별이에게 이끌려 10여분을 걸어가자 버스정류장. 488번 버스가 도착하고 찬별이와 함께 버스에 오르자 한 20대 여성이 찬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안내견에게 신호를 보내거나 만지는 것은 금물. 안내견이 흥분하거나 주의가 산만해져 안내에 지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5호선 화곡역에 도착하자 소풍 나온 아이들이 찬별이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뻗는다. 영등포구청역에서 내려 다시 2호선으로 갈아탄 전동차 안에서도 승객 4, 5명이 찬별이에게 손을 내민다. 찬별이가 흥분해 걸음이 빨라지고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가려 한다.

이윽고 약속 장소인 신촌의 한 피자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한 직원이 앞을 가로막는다. 개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애완견이 아니라 ‘안내견’이라고 한참 설명하자 지배인이 나타나 자리를 안내했다.

▼˝개털 날린다˝문전박대▼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 편. 두 달 전 중구 명동의 한 중국집에서는 개털이 날린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했다. 지난 달 서초구 양재동에 뮤지컬을 보러갔을 때는 담당자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겨우 맨 뒷자리를 배정 받을 수 있었다. 현행법은 공연장, 음식점, 숙박업소에 안내견과 함께 출입하는 것을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후 5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려 하자 주인이 난감해한다. 개가 짖거나 사람을 물지 않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야 마지못해 구석자리로 안내했다.

식사 후 인근의 주점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개는 안 된다”는 종업원의 저지에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택시 40분만에 간신히 잡아▼

“안내견은 절대 사람에게 짖거나 물지 않도록 훈련돼 있어요. 어떤 곳에서는 찬별이만 따로 밖에 두라고 하는 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냥 개가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눈 역할을 하는 특수한 존재라는 걸 꼭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개를 태우지 않으려는 운전사들 때문에 40여분만에 겨우 잡은 택시 안에서 전씨는 찬별이를 쓰다듬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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