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이정화/『어린이신문 보내주셔서 감사』

  • 입력 1998년 4월 22일 06시 33분


며칠 전 일이다. 서랍속에서 무얼 찾고 있던 아내가 편지봉투를 흔들며 내게 물었다. “여보, 이게 뭐예요? 무슨 중요한 것이기에 이 속에다 두셨어요?”

손님이 뜸한 시간이라서 한가하던 차에 재미난 일을 만난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편지 겉봉에 전남 강진군 어느 초등학교 분교의 아무개라고 씌어 있는 걸 보고서야 그것이 어떤 편지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내게 전해 주는 걸 잊고 넣어둔 모양이다.

공책을 찢어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큼직한 글씨로 썼는데 신문을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이 다음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적혀 있을 뿐이지만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소년동아일보 보내기 운동에 참여한 것은 89년9월이다. 외진 곳에 살며 충분한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신문을 보내보자는 안내문을 받고서 경기 강원 전라도에 있는 일부 초등학교에 매달 1백50부씩 보내기로 했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해오면서 작고 보이지도 않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간혹 아이들의 편지를 받기라도 하면 작은 일이지만 행복을 느낀다. 요즘처럼 자신이나 가족들을 건사하기도 어려운 때에는 인심도 메마른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눔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 순간에도 무의탁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남몰래 애쓰는 수많은 이름없는 자원봉사자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환해진다. 한편으론 내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자기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자식을 위해서라면 간도 떼어줄 만큼 교육열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부모들이다. 그러나 컴퓨터니 영재교육이니 하는 도시의 교육열풍 속에서도 마치 아프리카 오지의 아이들처럼 신문하나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는 도서산간 벽지의 어린이들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 그루의 묘목이 커다란 나무가 되어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기까지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듯 이 일을 기꺼이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정화(서울 노원구 하계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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