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韓美日 경제전망]日경제평론가 다나카 나오키

  • 입력 1998년 4월 13일 09시 09분


일본 21세기정책연구소 이사장인 저명한 경제평론가 다나카 나오키(田中直毅·53)가 한일간의 한 연구모임 참석차 방한해 10일 본보에 한국과 미일경제에 대한 견해를 들려주었다. 한국경제를 보는 일본측 시각의 한 단면을 접할 수 있었다.

▼ 「日本책임론」은 잘못▼

―일본경제가 정말로 흔들립니까.

“최근 2년간 자산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설비투자에 대한 경영자들의 단기경제관측이 계속 나쁘게 나왔습니다. 그에 따른 주가하락이 엔화약세(미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상승)로 이어진 일면이 있습니다. 또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반복됐습니다. 경제정책이 적절하지 못했던 것이 가혹한 악재가 되어 달러당 1백40엔까지는 엔화를 팔아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가 9일 4조엔의 감세를 포함해 10조엔이 넘는 재정 코스트를 치르고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일본은행은 10일 시장에 강도 높게 개입했습니다. 이로써 엔약세 저주가 저채권가의 이른바 트리플약세가 확실히 반전될까요.

“정책당국의 그같은 결의를 보면 엔화 약세가 멈추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일본경제는 최근에 특별히 나빠진 게 아니고 수년간 나빴습니다. 이번 대책은 이의 반전을 시도한 것입니다. 아시아 전체와의 관계 때문에라도 적극적 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더 이상 나쁜 재료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 점에서 주가하락 엔화약세 같은 악화된 시황도 곧 바닥을 칠 것으로 기대합니다.”

―작년부터 확산된 아시아 경제위기를 일본이 방치하거나 조장했다는 지적, 이른바 일본 책임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일본이 잘못해서 아시아경제가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내수침체가 아시아 각국에 부담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을 향한 아시아권의 수출도 줄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모델의 금융 및 산업시스템을 채택했기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는 것도 우스운 얘기입니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자주적인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무역금융과 생산금융이 늘어나는데도 일본의 수입이 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겠지요.”

―아시아 경제위기는 국제금융시장을 장악한 유태자본의 아시아배싱(때리기)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음모는 없었다고 봅니다. 국제금융자본은 아시아 각국의 성장한계와 경제불안을 보고 96년부터 퇴출하기 시작했고 그 이탈이 97년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가속됐을 뿐입니다. 아시아의 위기는 수출경쟁력 저하, 경상수지 악화, 외화부채 급증, 대기업 연쇄도산, 경기사이클 하강, 부적절한 정책대응 등이 가져다준 결과라고 봐야합니다.”

―미국의 장기호황도 거품이며 머지않아 미국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세계경제가 또한번 엄청난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미국경제의 거품은 아시아 각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적습니다. 오히려 아시아 각국의 과잉생산능력을 해소하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아시아에 대한 투자자들은 중국 상하이(上海),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태국 방콕 등지의 땅값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주가는 너무 높고 그 상승템포가 다소 빠른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87년 블랙먼데이 직전의 이상(異常)과열과는 다릅니다. 미국 주가가 1년 전 수준으로 후퇴할 수는 있지만 이는 거품의 붕괴가 아니라 시장의 자율 조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미국은 8년째 경기가 상승중이지만 1년째인 것처럼 물가가 안정돼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경기를 거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 中 위안화 절하 않을 것 ▼

―중국은 위안화를 평가절하할까요.

“중국 당국은 위안화의 환율을 그대로 유지하려 할 것으로 봅니다. 국가가 보조금을 늘린다든지, 임금을 하락시키는 방법으로 사실상의 평가절하는 하겠지만….”

―한국경제의 위기극복 과정을 어떻게 보십니까.

“9일 40억달러어치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성공적으로 발행했다는 것은 한국경제가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발행금리가 외환위기 이전보다 높기는 하지만 리스크가 최악인 상태의 금리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안요인은 상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업자가 계속 늘어날 경우 정치적 리더십의 유지가 가능할지 주목됩니다. 한국경제가 바닥을 치고 견실한 상승곡선을 그려갈지, 현재의 어려움이 상당기간 지속될지는 올 가을쯤 판가름나지 않을까요.”

―지금 상황에서 어떤 고용대책이 효과적일까요.

“어려운 과제입니다. 임금이 얼마나 떨어지고 물가가 얼마나 오를 지가 문제라고 봅니다. 물가가 연간 10% 이상 오르고 임금이 20% 이상 하락한다면 큰 일이 될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엄청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하의 인플레)이 표면화할 수도 있습니다. 물가는 비교적 단기간에 안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임금수준을 다시 올려놓는 데는 4∼5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임금 하락폭이 클수록 실업률이 떨어지겠지만 경영의 투명성을 일거에 달성하지 못하고서는 임금하락을 계속 요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임금하락의 접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수출중심의 경제회생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기간에 너무 무리하게 무역수지 흑자를 늘리려고 하면 부작용도 따릅니다. 너무 급속하게 수입을 줄이면 결국 수출에도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임금이 떨어지면 자연히 사치품의 수입은 줄어들 것이고 그밖의 수입은 수출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경제시스템의 조기 건전화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정책과 기업의 투명성입니다.”

―한국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할까요.

“그것은 한국 스스로 선택할 일입니다. 지금까지 외국인 투자가 극히 적었던 것도 한국 자체의 선택에 따른 결과입니다. 한국 스스로 여러가지 규제를 통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될수록 배제하려 해온 것이지요. 일본도 비슷한 점이 있지만 일본은 그에 따른 코스트를 지금 치르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번 위기를 통해 코스트를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부터라도 21세기의 한국을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늘릴 수 있는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지만 민족주의적 감정과 한국내 여러 부문의 이해(利害)관계가 이를 막을지도 모르겠군요. 한국인은 외국인에 대해 폐쇄적이고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 하는 점은 한국내에서 논의해서 한국민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지원 조건으로 요구하는 이행 프로그램이 너무 가혹하다는 논란도 있습니다만….

“일본에도 2차대전 후 미국점령군사령부(GHQ)체제라는 말이 있었지만 ‘IMF 체제’니 ‘IMF 극복’이니 하고 너무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건전한 경제시스템을 한국인 스스로 만들어나간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외국인에게나 내국인에게나 알기 쉬운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환보유의 내용을 국민이 쉽게 알 수 없는 경제시스템을 건전한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 官治금융이 政治금융으로 ▼

―김대중(金大中)정부의 경제개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 탄복할 정도로 위기대처를 잘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거의 관치(官治)금융이 요즘은 정치(政治)금융으로 바뀌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금융업계의 자율이 발휘되지 못하는 상태로 보입니다. 확실한 금융경영자에 의해 하나하나 설명 가능한 금융시스템을 만드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미국계 은행들이 서울은행이나 제일은행의 경영권을 확보하면 한국 금융산업에도 자율이 생길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것이 한국 금융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감사원이 ‘외환위기 책임자’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요청했습니다.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결론을 매우 빠르게 내리는군요. 책임을 분명히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상당히 가혹합니다.”

◇ 다나카 나오키 약력 ◇

▼45년 일본 아이치(愛知)현 출생

▼도쿄대 법학부 졸업·동대학원 경제학 석사

▼‘글로벌 이코노미’ ‘새로운 산업사회의 구상’ ‘빅뱅후의 일본경제’ 등 저서 다수

▼동아일보 연재 해외칼럼니스트로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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