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대화]『귀는 활짝 열고…말은 차분차분』

  • 입력 1998년 4월 6일 19시 15분


서울 도봉구 창3동에 사는 김상균씨(38·㈜좋은만남 텔피아 대표). 지난 금요일 아들 현진(11·신창초등5년) 딸 지현(8·신창초등2년)이와 오랜만의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차를 몰고 7시반쯤 집에 도착했다.

1시간전에 퇴근한 아내 김미선씨(36·대한보증보험 지현대리점장)가 차려놓은 저녁상. 갓지은 밥냄새와 콩나물국 김치부침개 고추볶음 등 오랜만의 ‘가정식 백반’에 군침이 돈다.

TV앞에 자리잡고 앉은 지현이.

“현진아, 지현아 밥먹어라!” “아빠! 밥 안먹을래요.” “왜? 배가 안고파?” “저녁때 과자랑 치킨을 먹었어요.”

불쑥 화가 치솟았다. 얼마전부터 애들이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아졌다. 환절기면 한바탕 감기치레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여보, 군것질 좀 그만 시켜. 제때 밥을 못먹으니까 애들이 비실대는 거 아냐! 당신 왜그래”하는 말이 입안에서 맴돈다. 하지만….

식사를 끝내고 TV를 보다가 10시가 넘어 아이들을 재운뒤 아내를 ‘호출’했다. “여보, 우리 차 한잔 할까?” “그래요.”

‘분위기’를 파악한 아내가 식탁 위에 녹차 두잔을 끓여 내놓는다. TV와 휴대전화를 껐다. 남편 김씨는 지난해 6, 7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의 ‘부부대화법’ 강좌에서 배운 ‘말하기 공식’을 머릿속에서 되살리며 입을 뗐다.

“여보, 내가 보기엔 애들 체력이 약해진 것 같아(보고 들은 것 묘사하기). 밥을 제대로 안먹어서 그런 건 아닐까. 요즘 부쩍 애들이 군것질을 많이 하는 것 같아(생각 말하기). 애들이 밥을 안먹는 것을 보면 화가 나(느낌 나누기). 군것질을 못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식탁 맞은편의 아내 김씨. “밥만 먹고 살아요!”라는 말을 속으로 삭였다. 부부대화법 강의내용 중 ‘듣기 공식’을 되새겨 본다. 김씨의 얼굴을 주시하면서(주의 기울이기) 가끔 고개도 끄덕인다(인정하기).

“당신은 애들이 밥을 잘 안먹은 이유가 간식을 많이 먹어서라고 생각하는거죠(요약하기). 더 하고 싶은 얘기는 없어요?(정보요청하기).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질문하기)”

“난 당신이 애들 군것질을 못하게 했으면 좋겠어…(소망 말하기).”

“당신 말에 맞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과자를 너무 안주니까 애들이 과자를 내놓는 친구집에서 늦게까지 놀곤 해요(보고 들은 것 묘사하기). 먹는게 부족한 때는 아니니까 가끔은 식사를 걸러도 건강에 지장은 없을 거예요(생각 말하기). 애들은 크면서 점점 군것질이 줄어들어요. 현진이는 벌써 과자에 손도 안대거든요.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시킬게요(타협).”

부부대화법 강좌를 맡고 있는 최규련교수(수원대 가정관리학과·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상담위원). “부부는 너무 친숙하다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그러면 안돼’식의 비난투로 말을 꺼내고 ‘나 지금 바빠’‘또 그 얘기야’식으로 외면할 때 사소한 갈등이 부부싸움으로 발전한다.”

최교수가 예로 드는 ‘고도의 부부대화법’이 필요한 주제 한가지.

‘야간 사랑’을 요구하면 “피곤해”라며 돌아 눕는 아내에게 화가 난 남편. 며칠전 반강제로 관계를 요구하다가 “지겨워 죽겠다”는 아내게게 단단히 화가 났을 경우.

이럴 때는 이렇게 말해보자. “여보, 요즘 당신이 잠자리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졌어(보고 들은 것 묘사하기). 당신이 짜증내며 돌아 누울 때 나는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느낌 말하기). 만약 정말 피곤하다면 이유를 설명해줬으면 좋겠어(생각 말하기). 난 당신과 오늘밤 사랑을 나누고 싶어(소망 말하기).”

〈박중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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