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안녕하십니까?

  • 입력 1997년 3월 11일 08시 35분


요즘에는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예전에는 우리말에 적당한 인사말이 없다고 불평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외국말을 공부하다가 그런 것을 느꼈는지 우리의 인사말이 도무지 어색하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진지 잡수셨습니까」하는 말을 생각하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더구나 한 때 유행하던 「아침은 얻어먹고 사십니까」에까지 이르면 인사라기보다 비아냥거리는 말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말 말고도 「안녕하십니까」라는 좋은 인사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 말은 상대방의 사정을 고려치 않고 「좋은 아침」을 외쳐대는 영어권의 인사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상대방을 염려하는 마음이 들어있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의사로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안녕하십니까』 그날도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에게 평소의 습관처럼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한참 동안 진찰을 하고 이야기가 다 끝나갈 무렵 그 사람이 어렵게 한 마디를 꺼냈다. 『저, 선생님. 별건 아닌데요』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구나. 『예, 말씀하세요』 『아파서 온 사람에게 안녕하냐고 물어보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닙니까』 간단히 한방 맞은 꼴이 되었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다음 날부터 인사말을 바꾸었다. 아예 처음부터 인사를 겸해서 『어디 아파서 오셨습니까』라고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한 동안은 별 탈 없이 버틸 수 있었다. 한 6개월쯤 지났을까. 황당한 일이 생겼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순간 환자의 표정이 이상해지더니 『그건 제가 물어볼 말인데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 『어디가 아픈 지를 찾아달라고 병원에 온 것 아닙니까』 참으로 엉뚱한 오해다. 역시 이 말도 안되겠구나. 그렇다고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오셨습니까』라고 하자니 영 이상하다.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로 바꾸어 보았다. 또 몇 달 후. 병원이라고는 처음 오는 것으로 보이는 여중생이 왔다. 『어떻게 왔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답한다. 『지하철 타고요』 아, 이럴 수도 있구나. 그 후 나는 또 다른 인사말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인사말은 그냥 인사일 뿐인데 그 말의 본래 의미를 가지고 씨름을 하자면 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편안히 생각하고 본래 사용하던 『안녕하십니까』로 되돌아 와 지금까지 사용해 오고 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별문제가 없었던 것을 쓸데없는 시비 때문에 방황을 한 셈이었다. 황인홍<한림대교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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