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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의사 삶 65년만에 『햇빛』…첫 傳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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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의사 삶 65년만에 『햇빛』…첫 傳記 출간

입력 1997-03-10 08:16수정 2009-09-27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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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기자] 1932년 1월8일 오전11시45분 일제의 심장부 도쿄(東京) 경시청 앞, 일왕 히로히토를 제거하기 위해 폭탄을 던진 한 젊은이가 있었다. 거사 직후현장에서 떳떳이 체포돼 열달간의 고초를 감내하고 10월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1세의 꽃다운 젊음을 기꺼이 바친 청년 이봉창. 그의 순결한 삶이 65년만에 되살아났다. 후손이 없던 탓으로 관련자료가 절대 부족했고 변변한 논문 전기 하나 없었던 터에 한 사학자에 의해 마침내 생생히 복원된 것이다. 「이봉창의사의 항일투쟁」(국학자료원 발행)을 펴낸 이현희 성신여대교수. 『이의사는 폭탄 투척을 자청, 상해 임시정부로 찾아간 인물입니다. 그런 자신감 때문인지 그의 사진을 보면 늘 웃는 모습입니다. 과감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교수가 밝힌 이의사의 매력 한 대목이다. 이교수는 이의사 판결문, 중국 신강일보에 발표됐던 김구선생의 글,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의 관련자료 등을 발굴, 수록했고 이를 통해 이의사가 24년 서울 효창동 자신의 집에 금정(錦町·효창동의 당시 이름)청년회를 결성, 항일투쟁의지를 불태웠다는 사실도 새로 밝혀냈다. 거사는 아쉽게도 실패로 끝났지만 독립운동사에 매우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폭탄 성능 실험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윤봉길의사 거사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이교수는 평가한다. 그럼에도 95년 서울 효창공원에 이의사 동상이 건립됐을 뿐 안중근 윤봉길의사에 비해 별로 조명을 받지 못해온 것이 사실. 정부차원에서도 지난 62년 겨우 2등급에 해당하는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한 것이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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